‘폭풍의화가 변시지’ 황인선 작가 인터뷰_ “외로운 현대인일수록 그림에서 위안 느껴”

‘폭풍의 화가’, ‘빛과 바람의 순례자’, 조선인이란 핸디캡에도 23세 나이에 일본 광풍회 최고상 수상,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동양인 최초 작품 전시...

변시지 화가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1300여점의 작품을 남긴 왕성한 활동에 비해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피니언타임스이 ‘폭풍의 화가, 변시지’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이유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 그림에 스토리를 입힌 황인선 작가와 함께 지난 10월1일부터 3월6일까지 변시지 시리즈 98편을 연재했다. 그림 속 까마귀, 폭풍, 남자와 비바리 소녀, 배를 각각 독립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5개의 이야기를 구성해 화가의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변시지 시리즈 전체보기

스스로를 폭풍 속으로 던진 화가, 자기 존재의 색을 찾아 치열하게 싸운 사람, 외로움의 끝까지 갔던 그의 그림은 고독한 현대인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황인선 작가 인터뷰를 통해 지금 왜 변시지에 주목해야 하는지,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황인선 작가

‘폭풍의 화가, 변시지’ 시리즈 연재가 5개월만에 마무리됐습니다. 변시지 화가의 그림들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묶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작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변시지 화가가 남긴 그림은 1000여점이 넘습니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거의 일기처럼 당시 화가의 외로운 심경을 그린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대가의 그림에 일일이 글을 달고 그것이 스토리로 이어지도록 한 이번 시도는 국내 최초일 것입니다. 어려운 점은 화가가 87세까지 살면서 삶에 대한 경지가 매우 높기 때문에 내 빈약한 그릇에 그 분의 폭과 깊이를 담아내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화가가 이미 돌아가셔서 그림에 얽힌 속이야기를 대부분 2차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점도 고민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림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스토리텔링북을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이 원고를 먼저 보신 이현세 만화가는 이 시리즈로 화가의 그림들이 맥락을 찾고 다시 살아났다고 평을 했습니다. 그 말에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변시지 그림을 보자마자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던데...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5년 전 제주도에 갔다가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가 누구인지 물었더니 지인이 변시지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그때 내 나이 50무렵으로 허무함이나 조급증, 외로움도 탈 때였습니다. 그림을 보자마자 가슴을 팡 치더군요. 특히 생존, 난무, 이대로 가는 길, 이어도,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은 가슴을 찔러요.

그의 그림은 ‘들어가서 봐야 하는 그림’입니다. 그림 속 오브제로 감정이입해서 들어가면 더 잘 느껴진다는 얘기죠. 모두가 외로운 오브제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화가의 아바타. 그들 하나하나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분자화된 우리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주도 자연, 토속문화, 신화적 오브제들이 다 녹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새겨놓았죠.

그러다가 변정훈 시지아트재단 이사장을 만났는데 도록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기존의 도록 대신 오브제들이 말하는 스토리텔링(일명 오브제텔링 기법)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그럼 한국에 유일한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도전한 거죠.

생존 ©변시지

변시지 화가의 그림에선 다양한 작풍이 엿보입니다. 어떤 그림에선 추사 김정희가, 다른 그림에선 고갱, 고호, 앙리 마티스가 보이는 식인데, 이처럼 다양한 그림이 변주되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

화가는 87세까지 사셨고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성장했습니다. 전쟁, 폐허, 질시와 견제를 경험했죠. 인간으로서 그리고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다양하게 겪었다는 얘기죠.

일본에서는 당시 주류이던 일본식 후기 인상파(인물 중심 인상)를 주로 그렸고 전후 서울에 와서는 한국을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고궁 등을 찾아 극 사실주의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신의 그림을 찾기 위해서 고향 제주도로 가서 폭풍과 신화 테마를 완성합니다. 노년에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한국 그림의 원형을 찾는데 그것이 추사 김정희가 연상되는 문인화류입니다.

©변시지

화가의 그림에 신화적 모티프가 많이 담긴 것도 신기합니다. 까마귀, 폭풍, 배, 섬 등은 단순 오브제를 넘어서 제주도의 토속 신화와 연결되는데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국의 신화>를 쓴 이현세 만화가는 변 화가 그림에 신화적 모티프가 넘쳐난다고 평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빈 배는 이어도를 상징하는 것, 돛단배는 고독한 투쟁을 하는 신화 속 영웅이나 죽어간 제주도 어부, 까마귀는 인간과 태양을 연결하는 새, 말은 몽고마의 퇴락한 전설, 섬 전체를 덮는 설문대할망 그리고 해녀는 제주도 도처에서 발견되는 여신들 이야기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말년에 그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의 최후작품과도 주제가 같지만 또한 제주도 신화 중 미여지뱅뒤(영화 <신과 함께>의 배경이 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연상시키죠.

©변시지

프로젝트의 큰 주제가 ‘바람이 전하는 말, 외로움, 그 끝까지 가다’ 였습니다. 이렇게 잡은 이유가 있다면.

공동체 삶과 가족이 붕괴되어 힐링이 필요한 혼족인 현대인은 외롭습니다. 바람은 외로운 사람들 틈을 벌리기도 하고 또 존재들을 연결시키기도 하죠. 화가는 성공의 절정에서 스스로 외로움의 길을 갔고 87세까지 혼자 살면서 평생을 외로움의 끝까지 간 분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백색 그림 시대를 열죠. 여백이 존재보다 더 큰 의미로 오는 시간 말이에요.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외로운 분들도 결국엔 그 큰 여백의 세계에서 위안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습니다. 화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그림에서 위안을 받기 바란다”고 하셨죠.

변시지 화가와 관련 추가 프로젝트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요?

먼저 오피니언타임스 연재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변시지 시리즈’에 이어 책자 발간, 전시회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귀포 신문에서는 시리즈를 제주어로 번역한 버전이 온-오프라인으로 연재됩니다. 다른 기획들도 추가로 준비 중이니 앞으로도 변시지 화가를 꾸준히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인간이 외로운 존재인 한 현재에 통하고 세계에 통하고 미래에도 통할 대 화가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WHO IS?

황인선 작가는 30년 경력의 문화 마케팅 전문가이자 7권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 AE, KT&G 마케팅 수석부장 등을 거쳐 전문서, 사회비판서, 소설, 기업 브랜드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장르의 저술을 하고 있다. 문화 브랜딩, 공간 브랜딩과 스토리텔러, 강연과 칼럼쓰기 그리고 춘천마임축제 총감독도 하고 있다. 말과 글 그리고 그를 지탱하는 생각에 대해서 쓴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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