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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처세술, 사과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김희태의 우리 문화재 이해하기] 피할 수 있었던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김희태 | 승인 2018.03.09 11:02

[논객닷컴=김희태] 우리 역사에 있어 치욕적인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삼전도의 굴욕’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당시 조선과 청(=청나라)의 관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 ‘남한산성’에서 주화파 최명길(1586~1647)과 척화파 김상헌(1570~1652)의 입장이 엇갈리는 장면이나 행동들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만 영화와는 달리 당시 인조는 치욕적인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점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가짜 왕제 사건을 통해 본 외교의 타이밍

당시 청은 조선을 두 차례 침입했는데, 1차로 침입했던 정묘호란(1627년)은 명나라를 치기 전에 후방을 다져놓기 위한 포석이었기에 군사적 시위의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어렵지 않게 화약이 맺어질 수 있었던 반면 2차 침입인 병자호란(1636년)의 상황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청나라는 이전까지 후금으로 불리다가 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황제국으로 선포했다. 이때 청 태종은 조선에 명과 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을 하게 되고, 인조와 조정이 머뭇거리는 사이 청나라의 군사들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며 병자호란이 서막이 올랐다. 당시 조선은 이괄의 난(1624년)을 거치며,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군사력이 진공 상태였기에 청의 진격 속도를 막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인조는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피신하려는 계획을 수정해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을 하게 된다.

피할 수 있었던 ‘삼전도의 굴욕’, 파주에 자리한 인조의 ‘장릉(長陵)’ ©김희태

당시 청은 조선과의 협상을 통해 왕제와 대신들의 입조를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인조와 조정에서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가짜 왕제를 보내는 행동을 했다. 결국 이 같은 사실이 발각되며, 분개한 청나라는 요구 조건을 올려 세자의 입조를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인조와 조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최종적으로 인조의 입조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반전이 되었다. 결국 더 버틸 수 없던 인조는 영화에서처럼 살기 위한 길을 찾게 되고, 그 결과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적인 장면으로 귀결된다. 충분히 외교적 처세술을 발휘해 왕제와 대신들의 입조에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못했다’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외교에도 타이밍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 세워진 삼전도비,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불리며 삼전도의 굴욕을 상징하고 있다. ©김희태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대응, 사과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작년 헌법재판소에서 있었던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된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밝혀지며,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집결했다. 이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사과의 타이밍으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를 보면, 사실의 관계에 기본적인 육하원칙이나 어떤 잘못에 대한 사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질지 등이 명확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잘못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여러 차례의 사과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책임총리를 통한 온건한 권력 이양을 하는 중재안이 나왔음에도 이를 외면한 결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안동 웅부공원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진정성 있는 행동이 담보되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김희태

지난 2015년 12월에 합의된 위안부 협상을 두고, 정작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의견은 무시한 채 합의된 내용은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다. 이때의 분노는 일본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일본에 면죄부를 준 이면합의에 대한 후폭풍이었다. 최근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는 미투(#MeToo) 운동의 영향으로 자고 일어나면 법조계를 비롯해 대중문화, 종교계, 정치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성범죄 피해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해자들은 기자회견이나 서면을 통해 사과를 하는데, 정작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대중의 공감을 얻기 곤란하다. 앞선 예에서 보듯 외교나 사과에도 타이밍이 필요한 법이다.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듯 단순히 일을 모면하기 위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할게 아니라,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희태

 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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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bogir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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