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사람]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잊고 싶어 하는 사람과 잊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누가 더 간절할까?
후자일 것이다.
잊지 않으려고 얼마나 간절하게 노력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에게 요즘 세상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인지 모르겠다. 드라마, 영화, 다큐, 그 무엇을 만들어 내든 인터넷의 세상은 대부분의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작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연출은, 연기, 원작의 형태나 시나리오는 또 어떠한가? 굳이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잔잔하게 감동과 이해로 승화시켜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해 오지 않았는가?

합의나 협상이라며 인상써가며 싸울 것도 없다. 만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고 영화, 한류 가수들의 패션도 좋고 다큐나 광고도 다 좋다. 꼭 교육적인 만화일 필요도 없고, 태극기를 전면에 세운 영화일 필요도 없다. 따뜻한 이웃의 정으로 감동받지만 그 이웃들은 일제 강점기에 이유도 모른 채 고통 받던 한국인들인 것이고, 영화 속 조연인 주인공의 귀여운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심하게 고통 받은 과거를 숨기고 씩씩하게 자녀들을 키워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인공에게 항상 희망을 주는 존재이며, 그저 한 컷에 불과할지라도, 만화에는 독립군 출신 할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이 들어가 있다.

이뿐 아니다. 한류스타는 전쟁영화에서 무척 멋있는 모습으로 적군에게 달려들어 극적이고 감동을 주는 엔딩을 남겨줄 것이다. 다만 그의 신분이 강제 징집되어 끌려간 학도병으로 영화 속 창작의 세계에서 징용이나 징병되어 끌려온 이들을 혹독하게 취급하는 일본군에 맞서는 역할이라면 충분하다. 물론 일본인 관객들이 깊이 공감할 만한 선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네이버영화

지난해, 군함도가 개봉했을 때,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일본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힌 내용이다.
”군함도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닌 창작 영화이다.“

그리고 강제 동원된 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고,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5년 양국 정부가 체결한 내용대로 이행되면 되는 것 아니었냐는 자신들 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완전히 합의 된 내용인 양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군함도의 징용피해자가 공론화되는 것이.

지금.
가짜 뉴스가 무엇이고, 진짜가 무엇인지 진실을 위해 가짜가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이 거짓의 시대, 거짓의 말로 독도를 강탈하려는 거짓의 말에, 그 거짓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에.
진실을 지키고, 진실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거짓을 교과서에 적어서, 거짓을 창조해내어 기억에 담고자 하는 노력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그 나라, 그 민족으로 태어나는 순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거짓의 노력으로도 덮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언제가 되어서야 그들은 깨닫게 될 것인가?

나의 할아버지, 나의 할머니,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피 속에 담겨 있는 것은 과거, 우리의 역사, 그리고 나의 아이의 피 속으로 흘러갈 그 역사.

한 민족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배척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 역사, 힘들었지만 조상들이 쟁취해냈고 피와 땀으로 우리에게 물려준 그 역사를 공유한다는 그 영광의 상징의 단어다.

다만 이제 우리는 그들의 반성이라거나 진실에 대한 인정을 바랄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전 세계적인 진실을 전파하는 것에 힘을 기울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어느 날, 우리의 시대가 저무는 날이 오면.
그 때는 우리의 자녀들이, 아들과 딸의 자식들이, 그 자손들이, 우리는 대를 이어서 제2의 군함도를, 제2의 귀향을 만들 것이다. 제2의 박열도 만들고,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최팔용(2.8독립운동의 주역)도 만들 것이다.

같은 지역을 가지고 일본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만들어 스스로를 미화시켰고 미국은 ‘아버지의 깃발’로 구원 신화를 다시 썼다. 그럼 우리도 같은 지역에서 한국인 강제 징용자(이오지마 지역 한국인 징용자 존재는 있으나 생존자 확인 안됨)를 주인공으로 이오지마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써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 징집된 103만명 가량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판, 오키나와, 이오지마, 과달카날 전투에서 희생당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어서까지 자유를 얻지 못하였던 그 눈물들에게 언젠가는 창작의 세계에게서라도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이오지마에 있었던 것은 편지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었다. 억울하게 끌려 나간 희생자들의 눈물이었다. 우리는, ‘이오지마의 눈물’을, 우리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 것이다.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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