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행 하나하나에 국제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한국시간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회담을 전격 수락,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직전에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각국에 충격을 주었다. 관세 부과는 오는 23일부터 시행된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동맹국들이 높은 관세를 내게 돼 반발하고 있다.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부를 무역전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세계 주가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됐던 세계금융위기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한 세계경제가 다시 1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지 불과 5일 만인 13일 트럼프는 또다른 폭탄을 터트렸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물러나게 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후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달을 때도 북한과 대화를 추진했었다. 트럼프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공개적으로 틸러슨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그랬던 트럼프가 생각을 180도 전환해 김정은과의 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틸러슨의 대북 대화론에 힘이 실린다는 느낌을 주자마자 전격 경질이란 또 한 번의 반전을 보인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트럼프는 "틸러슨 국무장관과는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서부터 이란 핵협정,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 것은 사실이다. 전격적인 국무장관 경질은 자신의 충동적 본능에 제동을 거는 틸러슨을 제거하고 아바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고방식이 비슷한 폼페이오를 내세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트럼프의 의지 표명이다.

틸러슨은 백악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혔다. 워싱턴에선 틸러슨 장관에 이어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곧 백악관을 떠나고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대사가 후임이 될 것이란 소문이 이미 파다하다. 앞서 6일에는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사임했다. 틸러슨 장관에 이어 맥매스터 보좌관까지 물러나면 트럼프의 충동적 행동을 견제할 사람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유일하다. 하지만 매티스 혼자만의 힘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백악관 내 온건주의자들을 계속 자신과 같은 사고방식의 강경론자들로 대체하는 것도 이를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나 관세 부과로 인한 세계 무역전쟁의 발발 가능성 모두 중요하기 그지없는 사안이다. 우리 입장에서야 향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여부를 결정하게 될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국제사회는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을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 관세 부과가 철강과 알루미늄에만 국한된다면 세계 무역 전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제품들로까지 관세 부과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U를 비롯해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이 된 나라들은 어떻게 해서든 23일 전에 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관세가 부과되면 보복이 불가피하다고 EU는 다짐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제소도 이뤄질 게 틀림없다.

트럼프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당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곧 600억 달러(약 64조원)에 달하는 중국 제품들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따른 미국 기업들의 피해가 관세 부과의 이유이다. 여기에는 의류 같은 기본적 소비재뿐 아니라 기술 및 통신 분야 제품들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이어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이제 이념적·지정학적으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는 양국 간 무역전쟁 서막을 올리는 것이 될 것이다. 미·중의 대립은 40년 가까이 지속돼온 이념의 변화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 자유화가 중국의 정치 자유화까지 촉진할 것으로 생각했고 중국은 미국의 자유무역 지지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보호주의를 내세우고 개헌을 통해 권한을 강화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반기를 들면서 미·중 관계의 근간이 흔들렸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고삐가 풀리게 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것이 국제사회에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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