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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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70년대만해도  버스(시내외)마다 여 차장들이 있었습니다. 요금을 받고 버스 문을 여닫아주는 역할을 했죠. 그녀들은 승객이 많아 헷갈릴 법도 하건만 ‘저 손님이 어디에서 탔고 어디에서 내리는 지’ 귀신같이 기억했습니다.

요금을 직접 받다보니 간혹 삥땅문제로 회사측으로부터 몸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얼마의 요금이 걷혔는지는 여차장만이 알기에 요금의 일부를 슬쩍한 게 아니냐?는 시비가 일었던 겁니다.

여차장 몸수색은 인권문제로도 비화돼 한때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버스승차권제와 토큰제. 그러나 이들 제도도 완벽하지 않아 요금함을 아예 자물쇠로 채우고 운전기사만 운행하는 버스가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여차장들도 하나둘 사라져 갔죠. 요즘의 교통카드 자동결제시스템이란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여차장 몸수색이라는 ‘아픈 역사’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렸습니다. 새벽버스에서 선 채로 조는 여차장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몸수색까지 불렀던 그녀들의 ‘삥땅’은 시골의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 생각에 한푼이라도 더 부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 ‘삥땅치다’는 말은 버스에 국한된 표현만은 아니었습니다. 공사판에서든, 시장통에서든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할 금전의 일부를 중간에서 슬쩍하는 행위를 통칭 ‘삥땅’이라 불렀으니까요.

‘삥땅’이란 말은? 

화투(노름)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삥’은 화투에서 1이고 ‘땅’은 ‘땡’과 같죠. ‘섯다’나 ‘도리짓고땡이’에서 1땡을 1땅이라고도,삥땡이라고도 했습니다. ‘새삥(4.1)’ ‘구삥(9.1)’ ‘장삥(10.1)’은 ‘섯다’에서 서열이 1땡 아래지만 ‘한끗’ ‘두끗’ 등의 ‘끗수’보다는 높죠. ‘땡’은 1땡(삥땡)부터 2~9땡, 장(10)땡, 3.8광땡 순으로 서열이 높아지고. 

이런 연유로 ‘삥땅치다’는 삥땡(삥땅)을 잡은 것처럼 ‘제법 돈이 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통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삥’‘이 화투판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나, 푼돈을 의미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역시 화투판 용어 중에 ‘삥판’이란 게 있습니다. 판돈이 많이 쌓이지 않은, 아주 작은 판을 이르죠. 여기서의 ‘삥’은 작다라는 뜻. 1이 화투장에서 가장 작은 숫자이고 보면 ‘삥땅치다’ 역시 큰돈이 아니고 작은 돈을 챙기는 행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겁니다.

화투판에서 ‘삥뜯는다’는 표현 역시 큰돈이 아니고,  누군가 한판을 크게 먹으면 구경꾼들이 ‘승자’가 먹은 돈 중 일부(소액)를 떼어받아내는 행위를 뜻했습니다.

시골에서 상경해 버스 여차장으로 고된 생활을 했던 억척소녀들이 티나게 큰돈이야 가로챘겠습니까? 가족들 생각에 동전 몇잎정도 챙겼다고 봐야 죠. 말그대로 ‘소소한 삥’이었을 겁니다.

‘빵집에서도 삥뜯었나’
MB(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MB측이 뉴욕제과에서 2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는 보도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삥치고는 거액입니다.

 ‘삥’이 금액의 다과를 떠나 ‘돈을 갈취한다’는 악의적 의미에 방점을 두고 한번 더 진화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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