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웃는한국]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트럼프·김정은 5월 회담에 대한 기대는 크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의 길이 열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기대를 배신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이기기 위한 외교” 내지 국내의 포퓰리즘을 겨냥한 “보이기 위한 외교(늑대 간의 협상)”를 할 것이 아닐까? 그런 협상은 성공하기 힘들다. 윈윈이 아니라 패패(lose-lose)의 협상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그간 이른바 블러핑 외교를 해 왔다. 양쪽 다 전쟁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정권을 건 도박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오피니언타임스’ 칼럼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밥그릇 뺐긴 개가 문다> 참조). 트럼프는 북한을 굴복시켜 국내적으로 ‘마초(macho)’를 과시하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전쟁을 하는 것은 포퓰리즘 차원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보았을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숙소를 미사일로 때릴 가공한 전력을 가진 미국을 엄청 무서워했을 것이다. 더구나 미군이 쓸데없이 많아져서 밥값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명분만 있으면 모험주의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무기 좀 생긴 것을 가지고 미국을 시험해 보았다. 도박을 한 것이다. 그 결과로 깨달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 자신보다 더 위험하며 인기 상승에 도움 된다면 별 짓을 다 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꼬랑지를 내렸다.

경제제재도 먹혔을 것이다. 특히 군대에서 쓸 휘발유가 부족한 것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양측은 ‘말의 전쟁’이 고조되어 원하지 않는 사태(전쟁)에 이르는 것을 우려하기에 이르고, 이러한 계산이 미국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인도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차 뱉어놓은 자신의 무책임한 ‘말’을 회수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김정은의 만남 요청을 덥썩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측이 평화에 뜻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나 김정은에게 그러한 의지가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포퓰리즘일 것이다. 평화보다는 ‘긴장의 유지’를 통한 정권의 유지가 아닐까? 트럼프는 미국 내 우익 세력에게 마초를 과시할 스파링 상대가 필요하다. 김정은도 탈북자 등으로 불안한 북한의 결속을 위해서는 ‘긴장의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이들이 구축할 체제는 ‘긴장이 유지되는 체제’가 아닐까? 블러핑 외교 시절과의 차이는 “협상을 한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변명’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픽사베이

나는 김정은이 적화통일을 할 생각이 없다고 본다. 북한 정권이 유지되려면 ‘긴장의 유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적화통일을 해서 긴장이 사라지고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생활수준을 알게 되면 정권의 위기가 온다. 옛날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가 축출된 것이 그런 연유에서였다. 실용주의적인 김정은이 왜 통일을 하는가? 나는 한-미훈련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도 단순히 수사(rhetoric)이거나 부하들이 물정 모르고 하는 얘기 아닌가 의심한다. 김정은은 여러 번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김정은이 남한을 핵 공격할 생각도 없다고 본다. 적화통일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 아까운 핵무기를 왜 남한 공격에 쓰겠는가? 핵무기는 협박용으로는 좋지만 일단 쏴버리면 고철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우린 왜 싸우는가? 이건 김정은의 ‘연기(演技)다. 김정은은 “공갈 팍 치면 남한 놈들 사색이 되더구만. 그러다가 달래면 좋아해서 들뜨고.. 병 주고 약 주기지”하면서 이불 속에서 웃을 지도 모른다.

‘핵동결’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던진 선물이다. 이것도 연기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선물에 불과하다. 세부사항(details)은 다시 협상되어야 할 것이다. 악마는 여기에 산다. 북한은 물론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한-미훈련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등.. 그러나 이것들은 미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군 내에 실업자가 엄청 생길 것이니까.. 북미수교,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 평화체제로의 이행 등은 미국이 수락하기도 어렵고 실용주의자 김정은에게는 ‘협상 카드(bargaining chip)’ 정도가 아닐까?

이번 협상의 최종적 걸림돌은 ‘비핵화’가 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 핵은 김정은의 정권유지와 직결된다. 미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면서 밥 굶고 구축한 핵은 김정은 정권의 명분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없앤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명분이 없다. 협상의 ‘불 타결’을 바라는 측에서는 이 문제를 협상 좌절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미국과 북한의 군부는 협상좌절을 희망할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는 이들에게 총알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시간을 끌면서 서로에게 협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을까 한다. 미국과 북한은 정권 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긴장을 확보하되, 협상이 계속 중이니까 개전(開戰)의 명분은 없는 ‘어중간한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이것이 장기집권을 위한 김정은의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통일을 서두르거나 이번 회담에 대해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비현실적인 ‘비핵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적인 ‘핵동결’이라도 확실히 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평화 분위기 속에서는 북한이든 미국이든 전쟁을 시동시킬 명분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은 미국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다. 신라가 외세를 등에 업고 통일을 하여 우리가 쪼그라든 역사적 경험을 잊었는가? 그리고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절대로 동족상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나는 김정은이 미군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해빙의 물결’이라고 본다. 여기에 평화통일의 길이 있다. 우리의 자주적인 통일의 길이 있다. 북한정권은 ‘원조’ 기타 교류협력을 무서워한다. 원조물자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주더라도 북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좋은 쌀이 갑자기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다고 북한 당국은 안 받기도 곤란하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무조건 교류하자. 조건이나 정치적 꼬리표를 달지 말자.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긴장을 완화하고, 거리를 좁히고,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대북관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도 시급한 해빙의 물결은 ‘남북 이산가족상봉’이다. 이산가족이 벌써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2015년 현재 50% 이상이 80세 이상이다. 시간이 없다. 100명쯤이 연 1-2회 상봉하는 것으로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못 보고 눈을 감을 것이다. ‘매달’ 300명 이상씩 상봉케 하자고 북측에 제의하자. 대신 개최장소 등 여타 조건에 있어서는 북측 입장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하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북측 희망대로 재개하겠다고 하자. 이산가족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이 역사의 한(恨)을 푸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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