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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군대’가 먼저다[김준범의 동서남북]
김준범 | 승인 2018.03.26 08:51

[논객닷컴=김준범] 1975년 합참의장을 끝으로 전역한 한신(1922~1996) 육군 대장은 병사 제일주의를 실천한 지휘관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전방 제1군사령관 시절에는 헬기를 타고 가다 예고 없이 아무 부대나 내려 병사들의 급식상황을 점검하고, 만약 정량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면 해당 지휘관을 즉석에서 엄벌에 처했다. 그 후 헬기 소리만 들어도 전방의 지휘관들은 벌벌 떨어야 했다.

사단장 시절에는 이등병 복장을 한 전입 신병으로 위장하고 부식(副食) 차량을 얻어 탄 뒤 취사장이 있는 막사에 내렸다. 그곳에서 영관급 참모와 하사관들이 방금 실어 온 식량과 고기, 생선 등 부식을 요리조리 처분하는, 오래된 적폐의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때 한 장군이 이등병 복장을 벗고 별 달린 사단장 복장으로 나타나자 현장의 간부들은 혼비백산했고, 그날부로 보직해임·감봉 등 중징계를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1인당 GDP는 2000 달러를 갓 넘긴 정도로 북한보다 낮은 상태였다. 그 시절 전방의 직업 군인들은 병사용 식량을 슬쩍 자기 집으로 빼돌리곤 했는데, 상부에서도 이를 ‘생계형’으로 인정해서였는지 알고도 눈 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한신 장군의 최대 관심사는 오직 병사들을 어떻게 잘 먹이고, 잘 훈련시킬 것인가에만 꽂혀 있었다. 그에게 병사들이란 유사시 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평소 ‘잘 먹이고(食), 잘 입히고(衣), 잘 재워야(住)’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대신 교육훈련은 실전과 같이 철저히 시키고, 병사들의 근심·걱정은 지휘관이 해결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군 장병이 배식을 받고 있다. ©육군

그의 지휘방침은 이렇듯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고 단순 명쾌하다. 90년대 초, 나는 한신 장군과 장시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장군의 지휘방침이 너무 단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장군은 “병사들은 다른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야 전투 시 잘 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필요조건, 즉 식량과 피복, 취침환경 등에 손을 대는 행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1953년 말 준장으로 별을 단 한신 장군은 그 후 첩보부대장, 육본 수송감, 수도사단장, 감찰감 등을 거쳐 육군 소장으로 승진하고는 1960년 논산 제2훈련소, 지금의 육군 훈련소장이 되었다. 그가 훈련병 식당에 가 보니 메뉴판에는 소고기 국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는 멀건 국물만 있고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황소가 그냥 지나갔다’고 해서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이라는 말이 그때 처음 생겼다. 그는 훈련소장으로 있는 동안 병사들의 먹고 입는 문제 등 기본권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식량·기름 빼 돌리기’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중징계로 다스렸다. 196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GDP는 채 1000 달러도 미치지 못했다.

3월 17일자 세계일보, ‘배곯고 병 걸리는 논산 훈련소’ 보도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육군 훈련소는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제반 급식상태와 시설, 환경 등이 매우 열악하고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입장에서 공분을 느낄 정도였다.

신문은 최근 훈련소에 다녀온 한 부모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아들은 ‘어묵 3점에 김치·무생채 나물·고춧가루 국에 밥이 평균 식단이라고 한다. 단백질 비율은 10% 미만으로 아무리 훈련량이 많아도 체형이 단단해지지 않는다. 굶주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며 훈련소에서의 고충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1인당 GDP 3만 달러 시대의 우리 국군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신문은 또 “화장실에는 피 묻은 휴지가 가득”했는데, 이는 “질이 떨어지는 거친 화장지가 보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어 훈련소 샤워시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지난 1, 2월 유례없는 한파 속에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 신병들은 훈련을 마치고 냉수 샤워의 악몽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2~3일에 한 번, 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샤워실은 한꺼번에 500명을 수용해 감기나 독감환자가 속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육군은 즉시 해명자료를 내고 보도내용을 대부분 부인했다. 육군은 “국민의 소중한 자재를 제대로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훈련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보도된 ‘어묵 3점’ 등은 군에서 존재하지 않는 식단 편성”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일과 후 200평 규모의 목욕탕에서 매일 온수 샤워를 지원하고 있으며, 화장지는 재생지가 아닌 천연 펄프 소재 화장지를 2013년부터 보급하고 있고, 훈련기간 중 발생하기 쉬운 감기·폐렴 등 질병 예방을 위해 온도지수와 훈련병의 건강상태·체력을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세계일보는 “육군의 입장은 부실한 훈련병 관리 시스템과 시설 노후화에 따른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투적인 답변”이라고 맞받아 쳤다. 신문은 훈련병들의 배고픔에 대해 그 원인을 배식 과정에서 찾았다. 정해진 짧은 시간에 수 백 명의 식사량을 똑같이 배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문은 이어 육군이 주장하는 온수샤워나 질병 예방 및 관리 등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신문은 최근 육군훈련소를 퇴소한 병사의 말을 인용, “샤워를 하면 머리가 통증으로 깨질듯 찬 물이 쏟아졌고, 이런 샤워는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반복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훈련 마지막 주에 행해지는 감찰반의 훈련병 소원수리 과정도 수박 겉핥기 식이라고 꼬집었다. 조교 등 부대 관계자들을 생활관 밖으로 내보낸 뒤 훈련소에서 겪은 부조리한 일들과 개선사항을 익명으로 적어내도록 하지만 잠시 뒤 그 쪽지를 들고 등장한 조교들이 ‘누가 이런 글을 썼느냐’며 색출작업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는 것이다.

육군훈련소는 “올해부터 침상형 생활관을 2층 침대형 생활관으로 개선할 계획인데, 올해는 1개 연대를 우선 추진하고 2020년까지 전체로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기사에서 제기된 훈련소 시설 및 훈련병 생활여건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면밀히 확인하여 미진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신속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07년에 2만 달러, 2016년에 2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10위 권대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육군훈련소가 GDP 1000달러 시대의 초라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곳을 ‘강군의 요람’이라 하겠는가?

최근 송영무 국방장관은 국방부 청사 내 별도로 유지해 온 장군식당을 없애고 일반식당과 통합시켰다. 군인은 이등병이든 장군이든 같은 곳에서, 같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민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주고 있다.

바라건대 송 장관은 이번 육군훈련소에서 드러난 제반 문제점들을 면밀히 체크해 평소 장관이 강조하는 ‘가고 싶은 군대’의 모범을 보여주면 좋겠다. 육군훈련소는 병사를 양성하는 최초의 교육기관이자 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결정해 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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