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헤르만 헤세 <데미안>(Demian)

전(前)과 후(後)의 기준이 되는 책

평범한, 그래서 흔한 남자의 이름이다. 데미안은 미국식으로 하면 스미스이고, 한국식으로 하면 김철수이다. 그래서 한국 작가가 이러한 소설을 썼다면 <김철수 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전 세계 사람이 아는 이름이다. 소설 속 주인공 중에서 그 이름만으로 데미안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여자 중에서는 테스가 으뜸이다). <데미안>은 한국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명작 베스트 3에 든다.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수억 권이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독서는 데미안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이 말을 수긍하기도 어렵고, 반박하기도 어렵다. 데미안은 정신의 영역에 묘한 충격과 감동을 주면서도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독일문학 전체에 해당한다. 현대철학이 독일에서 출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데미안> 초판. 작가 이름이 에밀 싱클레어이다. 헤세는 9판째부터 본명을 밝혔다. ©김호경

세계 역사에서 독일이라는 나라는 180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등장한다. 여러 개의 영방(領邦)으로 나누어진 독일을 최초로 통일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은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이다. 1862년 프로이센 총리가 된 그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 결정된다.”

철과 피는 강인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민족은 생김새부터 강인해 보이고, 말도 딱딱하다. 프랑스어가 숑, 옹 등의 모음으로 끝나는 것에 비해 독일어는 트, 크로 끝난다. 프랑스가 예술에 강한 것에 비해 독일은 기계에 강하다. 그래서 문학도 딱딱하고, 사색적이고,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에 독일어 전공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영어의 힘이 커지면서 대학에서 불문과와 독문과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제2 외국어 전공자가 사라지면 그 나라 문학작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번역의 매끄러움도 감소된다. 예컨대 1980년에 간행된 독일소설과 2016년에 간행된 똑같은 소설을 비교해보면 옛날 것이 훨씬 더 매끄럽고, 읽기 쉽고, 가독성(可讀性)도 높다. 그래서 나는 세계명작은 가급적 옛날 판본을 읽으라고 권한다.

헤르만 헤세 ©김호경

우리 모두는 카인의 후예

1944년 6월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독일군과 전투를 치르면서 서서히 나치 점령지를 탈환해 나갔다. 전투가 끝나면 죽은 독일 병사들의 군장을 검사했는데 연합군과 달리 책이 의외로 많이 나왔다. 그중 으뜸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이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독일 병사들은 전선으로 떠날 때 군장 속에 <데미안>을 넣었을까? 과연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헤세의 시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갈증을 느끼며 나는 이제 뜨거운 길을 간다.
그러나 내 청춘의 나라는 닫혀 있고,
장미들은 담장 너머로
내 방랑벽을 비웃듯 고개를 까닥인다.
- 청춘의 정원

그러나 솔직한 느낌으로, <데미안>의 명확한 뜻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앞부분, 싱클레어가 10살 무렵에 동네 형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은 그럭저럭 재미있다. 누구라도 어린 시절에 그러한 아슬아슬한 경험을 한번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이 전학 오면서부터 소설은 철학적으로 ‘급’ 변하기 시작한다. 그 전학생 막스 데미안은 성서(구체적으로는 카인의 이야기)에 대해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 논리는 독자에게 지루함을 안겨주면서도 의미불통이다.

카인(Cain)은 아담과 하와(Ḥawwāh: 보통 ‘이브’(Eve)라고 표기한다. 이브는 라틴어이며, 하와는 히브리어이다. 성경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므로 하와라고 하는 게 맞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의 맏아들이다. 동생 아벨(Abel)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다. 그러므로 아벨은 인류 최초의 시체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인은 용서를 받아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그의 후예(기독교적 관점에서)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인간 모두가 살인자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헤세의 친필 서명 ©김호경

아브락사스는 무엇?

소설은 특별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고,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우연히 만난 베아트리체라 이름붙인 처녀, 아브락사스의 의미를 안다고 장담하는 피스토리우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은 무언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데... 깨닫기 어렵다.

<데미안>에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80~90%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 문장이 멋있어서”라고 답한다. 그 새가 날아가는 곳이 아브락사스(Abraxas)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또 물으면 80~90%는 “창조주나 그리스 신화 속의 신”이라고 답하거나 “모른다”고 답한다. 사실 몰라도 된다.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말만 기억하면 되고, 그 말만 실천하면 된다.

한 설명에 의하면 “헤세는 1916년 5월부터 1917년 11월까지 융(Carl Gustav Jung)의 제자인 정신과 의사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에게 약 72회에 걸쳐 심리분석 치료를 받았다. 그때 헤세는 융의 종교심리학에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융은 아브락사스가 ‘무한하며, 선악의 어머니’라고 들려주었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신과 악마,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 참과 거짓, 빛과 어둠 등 양극적인 것을 포괄하는 신성이다”라고 되어 있다.

헤세의 묘지는 스위스 루가노의 아본디오 교회에 있다. ©김호경

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치료 도중에 헤세는 꿈을 꾸었다. 1차대전 기간인 1917년 9월 어느 날, 낯선 도시에서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괴한에게 공격을 받았다. 술에 취한 데미안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싸움에 지고 서류가방을 빼앗겼다. 데미안은 서류가방을 가져가면서 “이것을 패배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라”고 소리쳤다, 한다. 재미는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전리품은 승리자가 얻는 것인데, ‘패배의 전리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열심히 알을 깨부순 새(원전에 충실한 번역에 따르면 ‘알 속에서 투쟁한 새’)가 왜 아브락사스에게 날아가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이 책의 묘미일 것이다.

만일 징집되어 내일 전선으로 떠나야 하고,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독일 청년들이 <데미안>을 선택한 이유는 현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적어도 수억 명 이상이 이 책을 읽었고, 수만 명 이상이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들려주지만 나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다. 단 하나, 나를 벗어나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 외에... [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데미안>은 1919년에 발표되었다. 처음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2.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성경>을 먼저 읽어라. 시간이 부족하다면 <구약> 만이라도 읽기 바란다.

3. 헤세는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 지금은 ‘수레바퀴 밑에서’), <싯다르타>(Siddhartha) 등의 소설이 유명한데, 읽기는 쉽지 않다. <데미안> 한 편만 제대로 읽어도 된다.

4. 헤세의 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서, 기어이 부셔 버리고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고 있는 아이와 같이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 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며
내 마음이 고뇌에 떠는 것을 돌보지도 않습니다.

5. 독일문학은 <니벨룽겐의 노래>(The Song of the Nibelungs)를 독서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으며, 괴테가 등장해 세계적인 문학 대국으로 끌어올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를 로테(Charlotte)가 오늘날 롯데그룹의 이름이 되었다), 카프카의 <변신>(Die Verwandlung),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Die Blechtrommel),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 미하일 엔데의 <모모>(Momo) 등이 필독서이다.

6. 독일의 소설 중에서 사랑을 그린 작품은 매우 드물다.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독일 출신의 영국 철학자이자 동양학자)의 <독일인의 사랑>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심장병에 걸린 마리아와 나의 사랑을 8개의 회상으로 그린 명작이다.

* 모모는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가끔 두 소설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6. <데미안>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Beatrice)는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 神曲)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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