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전송]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오늘, 오래된 질문이 발사된 총알처럼 생생하게 뜨거운 울림으로 가슴에 물음표를 꽂는다. 이미 수천 번 꽂혔고 그러다가 제풀에 삭아 넘어지기도 저절로 빠지기도 했던 마음의 소리다.

시인으로 등단 후 장르를 넘나들며 이십 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내가 얻은 것과 내게 남은 것, 그리고 나는 왜 글을 쓸까!

꽃샘추위에 어깨와 등, 사이사이 시린 늑골을 두 팔로 감싸고 거실 창 앞에 쪼그려 앉아 거대한 레고 같은 앞 동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중이었다. 연 이틀 거대하게 불어대던 바람은 잦아든 듯했지만, 세상의 먼지와 소음이 다 올라간 하늘은 탁했고 어두웠다.

©픽사베이

3월도 이미 하순인데 어느 지방에서는 폭설이 내렸다 하고, 어느 지방에서는 분당 몇 미리의 큰 비가 쏟아졌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러나 내가 보는 세상은 고요했다. 폭설도, 큰 비도 없이 그냥, 어떤 큰 그림자가 세상을 덮는 망토처럼 눈앞의 모든 것에 드리워져 있는 듯 할 뿐이었다.

시인으로 등단해 삼십 년 가까운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는 물론 산문과 소설까지 쉼 없이 글을 써왔다. 글이 안 써져 불안했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불행했던 적은 많아도, 꼬박 48시간 뜬눈으로 글을 쓴 후에도 피곤하다고 불평하고 몸져누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틀 꼬박 바라보고 느낀 세상의 시간이 그만큼 나를 치유시키고 마침내 회복시켰다는 확신 속에 말랑거리며 잔잔해지는 나 자신을 만나곤 했다.

그것은 내게 글쓰기란 ‘내 안의 무엇을 끌어내는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인간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정으로도, 인간의 힘을 부정하고 기도에 매달려 신의 전지전능함에 애걸할 때도 꿈쩍도 않던 그것들이었다. 무남독녀의 외로움을 돌처럼 굳혀 만성체증이 있는 사람처럼 나는 늘 위태로웠다. 그 위태로움은 나로서는 너무도 처연한 것이어서 ‘우리 언니가’, ‘우리 오빠가’, ‘내 동생이’라는 주변의 말만 들어도 폭설과 폭우를 한꺼번에 맞은 것처럼 춥고 아팠다.

그래서였을 거다. 강박에 가깝게 나 자신을 몰아치며 글을 써오는 동안 ‘무엇이 되고 싶은가’보다는 ‘무엇을 하며 내가 나 자신을 이겨내고 있나’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은 내가 쓰지만 결코 ‘혼잣말’이 아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내 말과 내 속내를 들어주고 알아주는 청자가 있는 ‘말 건넴’이었다. 누구든 혼잣말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건 집안일을 하면서건 뭔가를 중얼중얼 지껄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없는가. 그때 하는 말은 정제되지 않은 이상한 부호, 혼자만 아는 주문 같은 말이 태반이다. 듣는 사람이 없으니 말의 기승전결을 갖추지 않아도 되고 의미 전달을 위해 비유나 예문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원시적인 나와 마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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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을 건넨다는 건 누군가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때 하는 말은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니다. 상대에게 말을 한다는 건 결국은 내 마음, 내 생각, 내 바람을 전달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이때는 말을 가다듬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내용의 명확한 전개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혼잣말을 할 때와 달리 생각의 체계가 갖추어지고 우선 내 생각이 내 안에서 먼저 정리가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깨닫는다.

내게 글쓰기란 혼자 하는 ‘혼잣말’에서 들어줄 사람이 있는 ‘말 건넴’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형제 없는 무남독녀에서 위아래 주렁주렁 형제자매를 만드는 일이었고, 이기심과 아집으로만 쌓은 나라는 성에서 이해와 포용으로 길을 내는 작업이었다. 글쓰기는 내 사유의 결과물을 배설하는 것이므로 내가 쓰는 글의 청자요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소통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 없다. 사유와 공간의 확대를 가져오고 자기성찰과도 일맥상통하는 글쓰기.

그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로 ‘내 안의 내가 상당 부분 치유되고 회복’되었다면 글 쓰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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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모 문학지에서 특집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답을 보았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홍윤숙 시인의 짧은 답이었다.

“아름다운 낙법 하나 배우기 위해 나는 시를 씁니다.”

낙법을 배운다... 그것도 아름다운 낙법을... 어떤 단어와 문장이 그렇게 아름답고 따뜻하며 잔잔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어떤 향기로운 차를 마셨을 때보다, 어떤 감미로운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어떤 숨 막히는 절경 앞에 섰을 때보다, 어떤 사랑의 희열에 죽어도 좋다고 느꼈을 때보다, 온몸과 마음이 평화로웠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름답게 떨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시를 쓴다던 시인은 가셨다. 나는 아직도 시시때때로 옆에 와 서는 외로움 앞에 속수무책이 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그분의 대답에 나의 단어를 끼워 넣어 하루 종일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외로워서 아름답기 위해, 외로워서 더 잘 살기 위해, 나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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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 간디는 말했지 않은가.

“인생은 모든 예술보다 위대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벽에 가까운 인생을 영위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다. 그 까닭은 숭고한 인생이라는 확실한 토대와 틀 없이는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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