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애잔한 모든 것들이 떠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봄은 왔다. 세 개의 계절을 거치고서 어김없이 나는 재채기를 했다. 미세먼지와 꽃가루가 섞이기 시작하면 알레르기는 유난스러워졌다.

지난 3월 학생으로 다녔던 학교에서 조교를 시작했다. 사무실엔 먼지가 많았고, 일은 쉽지 않았다. 일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무언가 쌓여있었던 것들을 덜어내느라 걸리는 시간들이 길어서였다.

©픽사베이

개강을 하자마자 꼬인 시간표를 푸느라 애를 먹었다. 학생 몇 명이 수업시간 변경 동의서에 서명하기 싫다는 의사를 밝혔고, 나중엔 학과장 교수님이 해당 학생들을 따로 만나 설득했다. 기분 좋게 끝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대학원 시간표 중 과목 하나는 전산입력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었다. 대학원 측의 실수가 아닌 우리 측의 기입 오류로 인한 누락이었다.

박사과정으로 입학한 연세 지긋한 대학원생 한 분이 찾아와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개설되어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을 때 느꼈던 막막함을 기억한다. 아마 그때 그 분을 쳐다보던 내 표정도 상당히 멍청하지 않았을까. 오래 지나지 않아 대학원 교학팀에서도 연락이 왔고, 아무것도 몰라서 헤매고 있는 나를 두고 교수님이 직접 대학원에 연락해서 통화하던 중 말을 꺼냈다. “지금 저희 조교애가 아직 신입이라 잘 몰라서요. 제가 뭘 보내드리면 될까요.”

그 말에 죄송스러워하기도 전에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은행 계좌개설 서류는 신입생들에게 모두 받아놓고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돌리지 않아서 학생증조차 만들지 못할 뻔했다. 교수님들의 프린트 토너는 주문해놓고 교체하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실시한 사무실 재물조사에선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다. 있는 물품이 없다고 처리되어 있었고, 기자재실에서 빌려온 표지판은 네 달 넘게 반납처리가 안 돼 있었다.

문예지와 계간지는 최신호가 안쪽 구석에 있고, 10년도 더 된 책들이 앞으로 나와있었다. 아무리 졸업생들 중에 등단한 사람이 적다지만 후줄근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먼지 쌓여있었던 무언가를 털어내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모든 책을 빼고 다시 정리하는 데에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고, 학과 사무실의 외부 모습만 그럭저럭 쓸만하게 보이게 하는데 꼬박 나흘이 걸렸다. 잠잘 수 있는 생활관을 등록해놓고서 한 달 가까이를 생활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후배가 졸업선물이라고 선물해준 간이침대가 그렇게 요긴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아무리 애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들 또한 있었다. 3월 중반 즈음이 되고, 학생들의 출결사항을 변경하기 위해 전화한 학사지원팀에서 끔찍할 정도로 듣기 싫었지만 언젠가 듣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소리를 결국 들어버렸다. “아……. 선생님 진짜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는데,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항상 부끄러워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빨리 익숙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중이다.

4월이 되었다. 이제 두어 개 정도만 정리하면 모든 정리가 끝나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98년도 대학교 요람들도 다 버렸고, 12년전, 10년전, 6년전, 3년전 교육과정과 유인물들을 모두 찾아 버렸다. 재물조사 품목들은 다시 리스트를 재정비했다. 오래 된 것들은 반납처리하고, 사놓고 쓰지 않는 비싼 촬영장비들은 학생들에게 대여할 수 있게 장부를 만들었다. 모르는 것들은 물어봐가면서 알아내는 중이다. 내가 예상못한 것들이 또 발견될지 모르지만, 한 달이 지나자 이제 이곳이 내 공간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우리 학과는 전체 학과 중에서 경쟁률 2위를 기록했다. 18학번으로 들어온 새내기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제 학생들에게 ‘꼰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학번이 된 거여서 어떻게든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어떻게든 4년 동안의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남는 것이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심. 교수님은 내게 조교를 맡기면서 잘 할 거라고 말했다. 내가 이런 마음이 들게 될 거란 걸 알고서 말한 걸까.

애잔한 모든 것들이 떠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봄은 왔다. 나의 봄은 따뜻했던 기억이 별로 없었고, 무언가 액땜하는 기억만으로 가득했었다. 그래서 봄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내가 잘 버티기만 한다면, 무언가 돌아와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있다. 행복해질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겠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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