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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미투가 오고 있을지도[황인선의 컬처 & 마케팅]
황인선 | 승인 2018.04.04 14:24

[논객닷컴=황인선] 정치 쪽에서 일하는 후배와 저녁을 먹다가 당연히 미 투(me too) 이야기를 했다. 정치 분야뿐 아니라 국회, 언론, 종교, 학원가 등등. 그러다가 전문가의 가치 인정문제가 나왔다. 점점 강의, 심사, 크리에이티브 자문 또는 컨설팅 등 종사자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가치 인정이 턱없이 낮아서였다. 차마 말은 못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미 투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픽사베이

보이지 않은면 가치가 아니다?

내 책 <꿈꾸는 독종>의 ‘창맹(創盲)’ 파트에서도 다뤘지만 내가 알던 한 프랑스 박사가 귀국한지 2년 만에 한국을 떠났다. 그녀는 스토리텔링과 비주얼 아티스트다. 인력 대행사한테 사기도 두어 차례 당했고 또한 한국 사회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관행에 실망해서다. 그녀는 “한국은 크리에이티브 인정가치가 프랑스의 1/2도 안돼요. 제가 20여년을 투자해서 얻은 무형의 능력, 그리고 제가 지속적으로 저에게 투자해야하는 것을 지불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보이는 것만 지불하는 나라엔 비전이 없어요.”

가슴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가치? 내가 배운 가치는 마케팅에서는 이렇게 도식화한다. Perceived Value= Perceived Benefit-Perceived Price.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나 가격, 혜택이 절대치가 아니라 인지된 것이라는 점이다. 생수 가격이 도시 편의점에서는 1000원 정도지만 사막 등에서는 인지된 혜택이 달라진다. 사막에서는 만원을 받더라도 인지된 가격은 낮다. 그래서 생수 한 병에 10만원도 받을 수 있다. 심야나 연말 또는 누군가 위급한 경우 택시비가 치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여기에 불만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지된’ 이라는 말이 빛인 동시에 덫이라는 점이다. 힐러리는 글로벌 금융회사 강의 한 번에 60만 달러를 받았다. 한국에 초대된 외국 유명강사들은 몇 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보장받는다. 한국도 방송에 소개된 강사들은 한 시간 강의에 최소 수백만 원을 받는다. “와, 이번에 그 00 명사가 강의했어.” 같은 인지된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이 혜택은 품질 즉, 강의 내용과 별개다. 이 경우엔 ‘인지된’이 빛이 되지만, 실력은 있는데 지명도 낮은 사람은 정반대로 덫이 된다. 한국엔 나름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시간당 10-20만 원에 심사, 자문, 강의를 뛰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사 학위자로서 대학교 전문 강사나 겸임강사들의 턱없이 낮은 수입 실태는 이미 폭로됐다. 따끈따끈한 신지식과 불타는 열정을 갖춘 그들이 기존 교수들보다 품질이 낮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우는 천지차이다.

나는 후배와 이것은 수요와 공급 법칙과 같은 것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푸념하다가 이번에는 반대로 무늬만 전문가, 웃기려고만 하는 코미디언 타입 강사, 영혼 없는 자문 등도 화살을 쐈다. 사례를 들다 지쳐 “그런데 정말 문제는 뭐야?” 묻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지식은 술 한 잔이 아니다.

“ 자문료가 없는데 대신 맛있는 저녁으로.”, “ 청년 대상 강의를 재능 기부...”, “ 좋은 회사 좀 연결해줘. 술 사줄게.”, “ 새 책 사인해서 줘봐.”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십년도 전에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관행이라면 한국의 프리 에이전트는 그냥 술과 밥만 먹다 죽을 모양이다. 2년 전에 프랑스 외교관이 한국에서 놀란 두 가지를 썼다. 하나는 한국 기업들이 고액의 컨설팅을 받고도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 또 하나는 자신의 아내가 한국 귀부인들 대상으로 프랑스 요리를 강의해도 그냥 “우리 사이에...” 하면서 저녁 한 끼로 지불하는 점이 그것들이다.

돈이 없어서일까? 아니. 사외이사가 한 달에 한 번 참석하고 거수기만 하는데 연봉 5천-7천만 원을 태연하게 지불하는 한국이다. 심사, 강의료는 낮아도 가동률 20%도 안 되는 문화회관, 박물관, 체육관 짓는데 수백억 원 투자가 쉽게 되는 한국 지자체이다. 그러니 문제는 지식은 비용이 아니라는 후진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망하여 한국을 떠난 그 프랑스 크리에이티브 박사의 지적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정부도 지자체도 기업도 지식 가치 비용을 수십 년째 현실화하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비용 현실화와 일자리 창출이 별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전문가가 제값을 받는 풍토가 되면 기업에서 좀비처럼 살지 않고 과감히 떨쳐 나올 실력 있는 인재들은 많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그들의 지혜를 이 사회가 제대로 쓴다면?) 요즘 서울시의 ‘서울, 잘 생겼다’ 광고가 감동적인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소한 지식 가치 지불에서는 잘 생기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유 투? 미 투”라고 말한다. 다만 공개적으로는 침묵할 뿐이다. 도대체 무슨 사정인가? 인재 풀이 워낙 많으니 당신 아니어도 사람 많다고 생각? 자문 건수가 너무 많아서 박리다매? 1%도 안 되는 전문가들은 시가 제일로 생각하는 서민 또는 일자리 창출 홍보 대상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그런데 그걸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입소문에서는 입이 네 개, 손이 여덟 개인 괴물이라는 것을.

미국이 강국이 된 이유

어떤 독자들은 ‘ 택시 기사, 휴지 줍는 할머니가 하루 종일 일해서 받는 돈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피카소가 기차에서 만난 한 부인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20분 정도 그려주고는 수만 프랑을 청구하면서 “이렇게 그리기 위해서 40년을 그렸어요.” 했다는 일화나 한국을 떠나는 두뇌들 소문 그리고 “나는, 받는 돈만큼만 자문해,”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소수의 배부른 소리라고만은 못할 것이다. 미국이 양차 세계대전으로 얻은 최대 수확은 미국으로 도망친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었다. 제대로 된 전문가 1인은 공장 1개보다 가치 있다. 지식은 소주 한 잔이 아니다.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7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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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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