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최우수상]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매년 연말이면 각종 시상식 릴레이가 시작된다. 제38회 청룡영화상도 그런 시상식 중 하나였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나문희보다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선규에게 더욱 많은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미 주연만큼이나 강력한 흥행보증수표가 된 명품 조연들도 있지만, 유독 최근 1, 2년 사이 눈에 띄는 조연에 대한 관심과 언급이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허성태라든가, 최귀화, 엄태구, 그리고 이번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의 주인공 진선규까지 꽤 많은 ‘연기파 조연’들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영화나 연극 또한 한 명의 인기 배우, 주연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내 마음속 애정하는 조연’ 들의 얼굴 정도야 익혀두는 분들도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주연에만 관심을 가져 왔다. 심지어 영화 포스터를 봐도, 부러 찾아보지 않고서는 비중이 적은 조연의 이름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근래 들어 갑자기 ‘조연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이름은 존재의 선명도

‘굳이 이름을 몰라도, 유명하고 인정받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속편한 생각을 하는 분들은 없었으면 한다. 우선 연예인이라는 것이 대중의 인기와 인정을 밑천으로 작동되는 직업이고, 그 인기와 인정의 시발점이 바로 이름을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에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신인, 또는 비인기 코미디언들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하거나, 이름으로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그들 나름의 생존 전략이자, 서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인 셈이다.

이름은 존재의 선명도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인용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직급이나 직책, 소속으로 불리는 것의 격차는 아주 크다. 그런 관점에서, 근래의 영화계는 바야흐로,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연에 대한 열망, 조연에 대한 공감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이런 세태는 어쩌면 보다 사회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 뛰어난 인물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의 기저에는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되고 말 거야.’ 같은 염원, 의지가 있기도 하고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으니, 상상이라도 실감나게 하자.’는 식의 대리만족이 있기도 하다.

조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바로 그런 ‘주연에 대한 열망’의 에너지가, ‘조연에 대한 공감’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양상이 아닐까. 자조와 좌절의 저성장 시대. 인내, 노력이라는 이전의 성공방정식을 맹신할 수 없는 시대. 성공학만큼이나 실패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 시대. 물론 우리는 우리 삶의 변치 않는 주연이긴 하지만,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조연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예전의 고성장 시대나, 그 시대의 향수가 일면 가능성으로 여겨지던 때까지는 ‘그래, 지금은 비록 내가 이렇게 살지만 인생 역전을 해내고 말 거야.’라는 믿음과 의지가 가능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체념하게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영화를 관람하던 이들은 이제 영화 속 조연들을 보며, 끝내 조연일 수밖에 없고, 조연으로 만족하며 행복을 찾아가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와 무의식적으로 공감했던 것이 아닐까.

조연은 풍경이다

주연이 세계를 이끄는 서사이자 사건이라면, 조연은 그 서사와 사건을 돕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병풍 같은 수동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래 전, 최소한 당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보라. 거기에는 디테일한 서사나 대사 같은 것들이 아니라 ‘어떤 풍경’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날의 날씨, 소리, 온도, 그 사람의 표정, 외투, 손을 잡던 촉감 - 그런 풍경들이.

그러니까 사실 삶이란 건 늘 풍경 속에서 벌어지고, 풍경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그런 의미에서 조연을 ‘풍경’이라고 말한 건, 그 순간의 비중은 적게 느껴지더라도 영화라는 러닝타임만큼의 세계를 든든히 떠받치고, 풍성하게 만드는 존재가 조연이기 때문이다. 조연의 한자어를 살펴보려고 검색을 했다가, 동음이의어인 조연(朝煙)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의미는 ‘아침에 하늘에 끼는 연기’ 또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였다.

아, 상상만으로도 애틋하고, 차분한 풍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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