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장려상]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팀점이 있는 날이었다. 나와 팀원들은 팀장님이 좋아하는 갈비탕 집에 앉아 있었다. 당시는 대통령직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과잉의전 보도가 연일 이어지던 시기였다. 평소 정치 현안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팀장님은 황 직무대행의 의전을 맹렬히 비판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이며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맹자님 말씀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팀장님의 목소리가 끊겼다. 가위로 고기를 발라내던 난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고 곧장 내 자리로 깍두기 그릇이 날아왔다. 난 1층 주방으로 내려가 깍두기를 가득 담아 팀장님 앞에 공손히 내려놓았고, 자리에 흩어진 김칫국물을 닦았다.

그 날부터 5개월 뒤 회사를 관뒀다. 팀장은 그 사이 상무로 승진했고, 팀장 자리는 임신 소식을 알리는 여직원을 “넌 눈치도 없이 이렇게 바쁠 때 임신을 하냐?”라며 노려보던 부장이 차지한 뒤였다. 언젠가 검색 좀 하겠다며 스마트폰을 빌려간 뒤 블라인드 앱에서 내가 쓴 글을 검열하던 과장은 내 퇴사 소식에 입맛을 쩝쩝 다셨고, 사수였던 대리는 “어딜 가든 똑같다는 것만 알아둬요”라고 말했다. 서른의 나이에 대책 없이 첫 직장을 관두며 느낀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픽사베이

88년 11월에 태어난 난 호돌이뿐만 아니라 87년 6월 민주항쟁도 보지 못했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귀했던 군부독재 시절 이야기는 조정래의 「한강」으로 “읽었을” 뿐 물고문도 전기고문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성장했다. 실내화를 안 가져왔다고 목탁으로 머리를 내리치던 고등학교 음악선생의 기행은 제자를 입원시킬 정도의 구타가 일상적인 훈육으로 여겨지던 70년대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고, 한 달 먼저 들어온 선임이 우리 땐 1분 만에 먹었다며 물도 없이 3분 만에 밥을 먹게 하던 “요즘 군대”는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갔다던 아버지 세대의 군대에 비하면 유치원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바람에 나와 내 또래가 겪는 폭력은 폭력으로 쳐주지도 않는 일상을 살아온 것이다.

우리 세대는 등 따숩고 배부르게 자란 탓에 인내심이 없다고 평가받는 데 익숙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젊은 직원들은 비분강개하여 온갖 불합리한 관행과 권위주의 문화를 정착시킨 장본인들을 욕한다. 문제는 성토회가 항상 장밋빛 전망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윗대가리들이 나가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은퇴하는 것으로 직장 내 민주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폭력은 세습되기 때문이다.

꼰대들에게 시달리면서도 그 고생을 인정받지 못하던 젊은 직원들은 그동안 쌓인 보상심리를 후배들에게 푼다. 눈치야근, 눈치회식 등 명백히 불합리한 관행을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체화시키는 것은 팀장이 아닌 젊은 사수의 역할이다. “자기 할 일 끝나면 퇴근하는 게 맞긴 한데 팀장님이 칼퇴하는 걸 안 좋아하셔서 나도 칼퇴한 적이 손에 꼽으니까 선택은 너가 알아서 하세요”라며 은근함의 미가 녹아 있는 화법을 구사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후배를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젊은 직원들은 뻔히 보이는 후배의 실수를 방관하고 있다가 후배가 팀장에게 형편없이 혼난 뒤에야 “원래 깨지면서 배우는 거에요.”라는 말 같지도 않은 위로를 건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본인이 당한 폭력에는 민감하지만 본인이 행사하는 폭력에는 둔감한 젊은 꼰대는 조직 곳곳에 매복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젊은 꼰대들은 천성적으로 교활하고 이기적이어서 악습을 대물림하는 걸까? 이들은 어려서는 IMF를 목격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은 세대다. 1997년, 악덕 사장 때문이 아니라 경제위기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실업자가 된 아버지를 지켜보던 자식들은 원망의 대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생존 자체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진작부터 느끼며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불과 5년 먼저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이 정도 준비하면 갈 수 있었던 이 정도 기업에 가기 위해 그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수능은 그나마 인풋대비 아웃풋이라도 정직했지 취업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기업마다 다른 인재상에 맞추기 위해 자소서를 수십 번 뜯어 고치고 인적성과 전공필기, NCS를 준비하며 밤을 새워도 면접을 볼 기회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겨우 도착한 면접장에서도 내정자로 인해 병풍처럼 서 있다 돌아오면 하릴없이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입사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패기 넘치는 청년이 아닌 순응적이고 경쟁에 익숙한 신입사원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직장에는 롤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는 꼰대를 욕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욕하는 저들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선배들에게서 배울 것은 없다. 또한 조직의 이익을 개인에 우선하는 충성경쟁을 펼치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만 보여 온 기성세대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치 않는다. 결국 표류하던 이들이 정착하는 곳은 방어적 개인주의라는 외로운 섬이다. 개인에 대한 존중까지는 바라지 않고 내 일은 실수 없이 책임질 테니 업무 외적인 일로 괴롭히지만 말아달라는 것. 이들이 바라는 건 매우 사소하다. 이를테면 깍두기 그릇이 비었을 때 막내직원에게 집어던지는 대신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이모님께 반찬 좀 더 달라고 부탁하는 것. 딱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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