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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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박세욱] 사시 눈을 가진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를 간절히 얘기하는 듯하기도 했다.
시계는 4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5시가 조금 넘어 직원들과 사장에게 수고하셨다는 영혼 없는 인사를 하고 작업장을 나왔다. 작업 확인서에 확인서명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12만 원. 오늘 7시부터 지금까지의 내 노동의 대가가 까만 글과 숫자 몇 개로 표시되어있었다. 숫자에는 우리 인력 사무실 소장의 노동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10%.

“아이. 저 새끼들 개념 없네. 아니. 4시 반에 일을 다시 시작하면 어쩌자는 거야. 정리하고 나와도 늦을 시간에. 에휴. 안 그래?”

사시 눈의 아저씨가 차에 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동의의 뜻으로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저래서 저 회사는 안 간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침에 굳이 또 소장이 한 번만... 한 번만... 그러니 또 안 갈 수는 없고. 아무튼 해로워. 저 뭐야. 먼지는 먼지대로 다 먹고. 돈은 꼴랑 12개에, 빨리 마쳐주기를 하나? 꽉 채워. 꽉. 아주 해로워.”

나는 오늘 처음 가본 철강회사에 우리 인력사무실의 몇몇은 이미 그곳을 거쳤었나 보다. 아저씨는 먼지 나고 근무시간을 꽉 채우는 회사에서 멀어질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대부분 불평과 불만이었지만, 귀가 솔깃한 얘기도 있었다.

“저 회사 바로 옆에 만보건설 보이지. 저기가 왔다 장땡이여. 열다섯 장 주는데 하루 종일 비계만 옮겨주면 돼. 한번 부르면 보름은 연작 부르니까 저기는 눈에 불을 켜고 가야 혀.”

일당 15만 원에 보름의 일자리. 특별한 기술 없이 작업장 조수로, 허드렛일 하는 잡부가 받는 금액 중에서 가장 큰돈 일 것이다. 15만 원 받아 그중에 10% 즉, 만 오천 원을 용역 사무실 소장에게 떼어주고 내 호주머니에 13만 5천 원을 넣어 따뜻하게 집에 갈 수 있다. 매일 새벽 오늘은 어디를 가나 눈알 굴일 일 없이 느긋하게 어깨 펴고 사무실 문을 나올 수 있는 보름의 일자리. 사이드미러에서 멀어지는 그 열다섯 장을 눈에 다시 넣어 두었다. 언젠가는 저런 곳도 가보는 횡재의 날도 있겠지.

‘월급’이 ‘일당’으로 바뀐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전의 회사를 그만두고 대리운전, 편의점 알바 등을 전전하다 큰 용기로 지금 인력사무실에 나왔었다. ‘6시’. 다들 아직 곤히 자거나 알람 소리에 비명 지르며 눈 비빌 그 시간에 나는 모자 하나 눌러쓰고 먼동 트는 아직 한가한 도로를 매일 같이 달렸다.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우고 어제의 먼지 낀 작업복을 입은 선배들을 헤치고 책상머리의 소장에게 눈도장부터 찍어놓는다. 해뜨기 직전까지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가 여기 있다고. 죽지도 않고 또 왔다고.’ 찍어둔다.

1년 전 죽지 않고 아니, 죽지 않으려고 인력사무실 문 앞에 섰을 때, 더럭 겁이 났다.
‘인력 항시 모집’ ‘건설 현장, 공장, 파출부. 인력 항시 대기’

항시 대기하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육신과 정신에 믿음이 없었다. 경험 없음이 두려운 것보다 30년 훌쩍 넘은 인생에 지구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내 비루한 육신과 정신임을 알기에. 등허리 반발짝 뒤로 벽의 차가운 한기를 느끼며 서 있는 내 꼴을 알기에. 더 이상 밀쳐질 곳도 없는 내 발끝을 알기에 더 겁이 났다.

그렇게 떨리는 걸음으로 매일 노을이 질 무렵, 작업 확인서를 들고 사무실의 소장 앞에 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콘크리트 벽면 한기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
“취직은 안 하시고, 계속 이런 일만 하시는 거예요?”
사무실 직원이 자신들의 손을 더 바삐 움직여야 하는 불안과 함께 물었다.

오후 5시면 뒤도 안 돌아보고, 목장갑을 벗는다. 정해진 8시간.
이곳에서(만) 지켜지고 있는 이 노동의 룰과 칼 같이 지켜지는 초과근무 수당에 내 ‘일당직’은 조금씩 더 단단해져 갔다. 그 단단함에 현장의 회사 직원들은 원망 섞인 눈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이렇게 버는 수입이 당장 돈 궁한 사람들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당장 돈만 궁한 사람이 되었다. 궁한 돈 몇 장 호주머니에 찔러 놓고, 점점 더 짧아지는 집으로 가는 길의 빌딩 사이를 천천히 달렸다.

호주머니 안 지폐 속 위인들의 옅은 미소는 비웃음 일지 언정, 아파트형 공장 사람들의 지갑 안 그 미소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위인들과 함께 그들은 아직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곧 그들도 서쪽 해 넘긴 손들로 밥을 먹겠지.

그 손들을 생각 하며 이른 저녁상을 차렸다. 티브이를 켰다. 뉴스다.
‘현실적 포괄임금제 폐지 방안 마련...’

지폐 속 위인들은 지금도 비웃고 있을까. 물끄러미 위인들을 바라본다. 뜻 모를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려는 참 인가 보다. 그 이야기들을 못 들은 척 나는 내일도 ‘항시 대기’ 하러 갈 것이다. 언제까지 일지 모른다. 아무튼 먼동이 트기 전까지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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