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이은경 화가 겸 치유예술가의 드로잉 노트, 낙서 메모. 그녀는 이런 노트를 통해서 무의식의 의식화, 관찰의 깊이, 마음 읽기를 한다고 한다. ©이은경

1. 위대한 나무의 죽음

위대한 창조의 신 오딘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 지역의 울창한 자작나무 숲에는, 높이를 알 수 없고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는 신성한 나무가 있었다. 신목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나무의 깊은 뿌리 끝에는 샘물이 있다고 믿었고, 이 물을 미미르(mimir)라고 불렀다. 미미르는 지혜와 기억의 샘물로 사람들은 미미르를 품은 신목을 ‘세계의 위대한 기억’이라고 부르며 공경했다. 이 위대한 기억의 나무에는 녹색 날개를 가진 작은 요정들이 살았다.

13세기로 추정된다. 어느 여름 날, 신목은 이제 싹을 틔운 지 백 년이 된 어린 딸을 축하하기 위해 숲 전체에 달콤한 향을 흘리고 푸른 잎사귀를 한층 더 넓게 펼쳤다. 녹색 요정들은 어린 신목의 생일을 축하하며 푸른 잎사귀가 흘린 신비한 액을 마시고는 황홀감에 빠져 노래하고 춤추며 놀다가 달조차 사라진 깊은 새벽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신목의 향에 무슨 마력이 있던 걸까. 요정들의 잠은 아주 깊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정들이 깨어나니 자신들은 어디론가 옮겨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요정들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이 아니었다. 신령스러운 나무가 불경한 인간들에게 어이 없이 베어진 채 숲에서 아주 먼 낯선 곳으로 옮겨졌음을 뒤늦게 알았다. 자작나무 껍질은 열 겹 이상으로 이루어져 한 겹 한 겹을 벗겨낸 표면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용이하다는 사실을 목재상 인간들이 알아차린 것이다. ‘위대한 기억의 나무를 고작 자작나무 따위로 알다니!’ 분노했지만 그러나 신목을 지켜야할 요정들은 잠에서 너무 늦게 깨어났다. 베어진 신목은 더 이상 달콤한 향과 액을 뿜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지만 신음도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토막 난 나무는 여전히 위엄이 가득했다.

요정들은 그날 밤 이후를 이렇게 기억한다. 위대한 기억 나무는 결국 책과 노트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나무는 숨을 쉬고 있었고 위대한 기억 나무의 숨결을 느꼈기에 요정들은 여전히 나무가 살아있다고 믿었다. 신목의 위대함을 믿는 요정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했다.

“신목은 우리의 뿌리예요. 그렇죠?”

“그럼요. 위대한 기억의 나무님은 결코 죽지 않아요.”

“한 마디 말도 없이 우릴 절대 버릴 리가 없어요.”

“위대한 나무가 다른 뜻이 있어서 이 모욕을 참는지도 몰라요. 오! 위대한 기억님이시여, 그렇지 않은가요?”

요정들은 불손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복수하거나 핀란드 자작나무 숲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신목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요정들은 신목의 육신과 숨결이 깃든 책과 노트로 스며들었다.   김한 7321디자인 대표, 이은경 

* 연재기간 중 좋은 노트 습관을 가진 분의 기고, 종이노트로 달라진 사례, 자발적인 샘플 노트 사진을 열린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관련 내용을 오피니언타임스 이메일(news34567@opiniontimes.co.kr)로 보내주시면 <노트의 요정> 연재 중이나 이후 보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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