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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요정2_노타모레와 부키의 탄생[‘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써니 | 승인 2018.04.12 11:10

2. 노타모레와 부키의 탄생

노트로 옮겨 간 요정들은 스스로를 노타모레라고 했다. 노트를 사랑하는(Amore) 요정이라는 뜻이다. 노타모레는 연한 감귤색의 피부와 녹색 기운이 감도는 긴 머리칼에 날개를 가졌다. 노트로 옮겨간 후부터 한 손에는 노트를, 다른 한 손에는 펜을 든 모습으로 변했는데, 점점 더 모습이 바뀌더니 왼쪽 눈은 예전과 다름없지만 오른쪽 눈에는 유선의 줄무늬가 또렷해져갔다. 노타모레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다. 다른 요정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똑 부러지지 못한 성격으로 덜렁거리고 부주의해서 몸에는 늘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가끔 놀라운 직관력을 보여 다른 요정들이 노타모레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책으로 옮겨간 요정은 부키(Bookie)라고 불렀다. 부키는 갈색의 짧은 머리칼, 코발트색 피부, 매미처럼 얇은 날개로 진화했다. 그래서 움직일 때는 늘 미세한 파공음으로 파라-락 소리가 났다. 책의 요정답게 눈에는 알 수 없는 고대문자들이 신비롭게 보였고, 얇고 큰 날개에는 라틴어, 수메르어, 한자와 같은 고대문자가 새겨져 있다. 수다쟁이 부키는 호기심도 많고 지식욕이 많아 뭐든 알고 싶어 했다. 다른 요정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치려드는 허세 병증도 있었다. 노타모레와 부키는 사이가 좋았다. 둘은 인간의 책상이나 가방 속, 거리의 서점이나 교수들의 서재, 도서관 등에서 자주 만났다.

노타모레와 부키가 인간 세상에서에 머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목에게서는 아직 어떤 육성도 들리지 않았다. 두 요정들은 점점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며 인간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원래 사납고 꽤 변덕스러웠지만 점차 칼과 만용보다는 지성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노타모레가 부키에게 이런 말을 했다.

“ 봐, 부키. 인간들이 점점 사색적이 되어 가는데... 그 숫자가 점점 늘고 있어.”
부키가 에헴 하는 제스처로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올랐다.

“ 노타모레, 다 내 덕 아니겠어. 크크.”
“ 부키, 이게 어쩌면 위대한 기억의 나무가 스스로를 베어내게 한 이유 아니었을까?”
“ 에이 설마... 아니, 진짜 어쩌면?”
“ 나는 점점 그런 생각이 들어. 위대함이란 게 그런 힘이었을 거 같다고.”

부키가 날갯짓을 접고 책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핀란드 숲을 바라보면 말했다.
“ 오, 위대한 기억의 나무시여, 그렇다면 저희는 더 열심히 인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70대 여성이 보내온 노트. 평소 자기치유삼아 적은 드로잉노트로 서툴지만 진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각각 남편의 양복, 동네 길,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기억하며.

세월이 더 흘러 인간들이 책과 노트를 더욱 가까이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게르마니아 나라에 구텐베르크라는 장인이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였다. 그로부터 100년도 채 되지 않아 더 많은 종이가 필요했고, 그만큼의 나무가 베여졌다. 그럴수록 숲의 요정들이 더 많이 세상으로 날아왔다.

구텐베르크가 활동한 시대 그 후로도 시간이 더 흘렀다. 사람들이 계몽의 시대라고 불렸던 때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책과 종이를 찾게 되었다. 봉제공장 여공들과 탄광의 광부도 책을 읽고 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배우고, 종이에 글을 써서 자신을 기록하여 남겼다. 지식은 미덕이 되었고 기록은 유산이 되었던 시대가 이렇게 왔다. 아이들이 할머니의 목소리로 듣는 옛날이야기는 이제 독서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할머니들은 그게 아쉬운지 가끔 책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긴 했지만 할머니들도 점점 돋보기를 쓰고 글을 배웠다. 현명한 할머니들은 손자와 손녀들을 위해 직접 노트를 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노타모레와 부키는 이런 변화에 가슴 뿌듯했지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먼 핀란드 자작나무 숲에서 온 자신들의 존재를 사람들이 몰라줬던 것이다. 책을 펼치거나 노트 위에서 펜을 드는 건 요정들을 그들 인간세계의 창으로 불러내는 행위였다. 책을 펼치면 부키는 인간세계로의 초대에 기쁨의 창을 열고 마구 수다를 떨었고, 노트와 펜을 집어 들면 노타모레는 영롱한 눈을 들어 노트의 주인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사람들은 요정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식을 숭상하면서 더 이상 신령스러운 나무와 요정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간혹 그들을 인식하는 예민한 육감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책을 찢고 불태우고 노트를 뜯어 휴지로 쓰기도 했다.

어느 날 유럽의 고색창연한 도서관 지하로 부키가 파라-락 소리를 내며 노타모레를 찾아왔다. 반가운 인사는 뒤로 하고 부키가 대뜸 투덜거렸다.

“ 어쩜 인간들은 이렇게 멍청하고 둔한거지? 우리를 모르는 것 같다고. 우리가 얼마나 이 무식했던 인간들을 위해 수고를 하는데 말이야. 노타모레, 이 자들에게 우리 존재를 좀 알려줘 볼까? 크크.”

노타모레가 유선의 줄무늬 눈을 깜박였다. 귀가 영롱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 좋아. 근데 좋은 방법이 있어, 부키?”

부키는 으스대는 몸짓으로,
“ 기억나? 수백 년 전 어린 신목이 100살이 되던 그 날 우리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향 말이야. 위대한 신목이 우리에게 뿜어냈던 그 향을 우리가 한 번 내볼까?”

“ 오라, 그 향…. 음 과연 우리가 될까?”

노타모레를 향해 거만한 웃음을 보낸 후에 부키가 하늘을 향해 기원의 소리를 내었다.

“ 위대한 기억의 나무시여, 그 향의 권능을 저희에게 전해주소서.”

노타모레 눈에는 부키 날개에서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마구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김한 7321디자인 대표, 황인선

* 연재기간 중 좋은 노트 습관을 가진 분의 기고, 종이노트로 달라진 사례, 자발적인 샘플 노트 사진을 열린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관련 내용을 논객닷컴 이메일(news34567@nongaek.com)로 보내주시면 <노트의 요정> 연재 중이나 이후 보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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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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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용현 2018-04-12 22:58:06

    재밌습니다.
    대작의 예감이 듭니다 (반지의 제왕 II?).
    저처럼 쓸데 없는 사회과학을 한 사람에게는 외경입니다.   삭제

    • 서용현 2018-04-12 22: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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