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장려상]

‘귀하는 2차 필기 전형에서 안타깝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문구. 뭐가 안타까운 걸까. 괜히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났다.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보던 시사상식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3번 째 탈락.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 놈이다. 얘는 왠지 붙었을 거 같은데, 별로 받고 싶지 않다. 둘도 없는 친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미운지. 그냥 스마트폰 전원을 꺼버렸다.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지만 3분전에 받았던 익숙한 문자 문구가 눈앞에 아른아른 맴돈다. 그냥 책을 덮고 엎드렸다. 모르겠다. 정말.

슬며시 스마트폰을 켜보니까 친구한테 카톡이 와있다. 떨어졌단다. 술이나 먹자고 한다. 정말 간사하게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웠던 친구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래 오늘은 마셔야 될 거 같다. 취준한다고 입에 술을 안댄지 3개월이 넘었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나도 위로 받고 싶다고.

한 공기업에서 입사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왜 우린 언론고시 하겠다고 이 고생일까. 시작한 게 후회된다. 안 그러냐?”

친구도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술을 잘 하지도 못하는 게 소주를 벌써 3잔 째 원샷하고 있다. 그러게. 왜 언론고시 하겠다고 결심했을까. 나는 PD가 되고 싶었다. 왜 PD냐고? 그냥 PD라는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뛴다. 일이 고되어서 며칠간 잠을 못 잔다 하더라고 PD라면 괜찮다. 아니 너무 좋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밤을 새는 것, 얼마나 로맨틱한가. 하지만 난 그런 달콤한 꿈을 꿀 자격이 없는 걸까. 계속되는 낙방에 이젠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포기해야할까. 만약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 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았던 걸까. 청춘이라는 신발을 신고 꿈을 향해 뛰었지만, 이제 그 청춘은 닳아가고 있었다.

심하게 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고 혼자 터벅터벅 불 꺼진 자취방에 돌아왔다. 대충 손이랑 발만 닦고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아, 위로받고 싶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노력하면 못 이룰 꿈이 없다고 말한다. 실패해서 좌절하면 다음엔 더 잘 될 거라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어른들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우리 기준에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리 처참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잘 될 거라는 그 다음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

어렸을 때 신나게 놀다가 다쳐서 울상이 되면, 친구들이 많이 하던 말이 있다. '괜찮아 안 죽어.' 상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지만, 그 당시엔 그 덤덤한 말을 들으면 괜히 안심이 되고 힘도 났다. ‘그래 죽지도 않는데 뭐 어때’, 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탈락 문자를 연속으로 3번을 받아도,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어도, 친구들이 전부 취업해도 '괜찮다'라는 말.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지금도 괜찮아' 라는 말이다. 사실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 이 괜찮지 않은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벗어나고 싶은 사람도 우리지만,

그냥 괜찮다고 해주세요. 지금도 멋지고, 아름답다고 해주세요.
괜찮아, 안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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