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4. 페르푸메가 옅어지고 있다.

부키와 노타모레가 좋아라 수다를 떨었던 후로 세월이 더 흘렀다. 장난감 같았던 사진기가 더 발전했고 놀랍게도 텔레비라는 것이 나왔다. 인간의 기계 능력은 끝이 없었다. 모든 것이 작은 사각 상자 안에 담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울고 웃고 떠들었다. 인간들은 이제 기계의 힘으로 거칠 것 없는 축소 능력을 구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노트를 하는 숫자가 분명히 줄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염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텔레비가 바보상자이니 보지 말라고 했고 지식인들은 새 기계를 경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럴수록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노트를 하라고 세상에 소리쳤다. 정말 다행이었다. 두 요정은 ‘휴, 이게 다 페르푸메 덕분이야.’ 하면서 가슴을 쓸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요정들 세계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기계들의 출현에 따라 요정들의 분열이 한차례 있었다. 어린 요정들은 ‘텔레토비’라는 요정으로 변신했다. 그들 요정들은 ‘텔레(Tele)라는 에너지를 썼다. 전기와 전파를 통해 이미지를 삽시간에 멀리 보내는 에너지였다. 이미지는 너무 진짜 같아서 실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지는 삽시간에 수백만 사람들에게 진짜처럼 전송되었다.

©픽사베이

한 가정 집 텔레비전 상자에 앉아, 부키와 노타모레는 뭔가 불길함을 느끼면서 이 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텔레... 빛의 속도로 멀리? 이제 인간은 우리 요정들보다 더 멀리 빨리 가는군.’

거기서는 주근깨 여자도 근사한 백색 미인으로 변했다. 사기꾼이 예언자가 되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이 스타로 둔갑하기도 했다. 노타모레는 그들의 노트 속을 볼 수 있어 실체를 알기에 거기에 속지 않았다. 노타모레가 부키에게 다시 경고했다.

“봐, 저기서도 페르푸메가 느껴지지 않아. 느껴져, 부키?”

이번에도 부키는 노타모레 말을 듣지 않았다. 매스라는 집단이 출현했고 매스들에 의해 책은 더 많이 읽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체로 경박한 책들이었는데 부키는 애써 그를 무시했다. 사람들은 점점 경박해져 가는 것 같았다. 매스들에게 진실은 상관없었고 사실 알기도 어려웠다. 책의 페르푸메가 강하게 배인 양심적 지식인들은 빅 브라더 현상을 우려했지만, 부키가 노타모레에게 그랬듯이 사람들은 그들 말을 듣지 않았다. 반응은 오히려 반대였다.

“빅 브라더, 그게 왜 위험한데?”
“얼마나 좋아. 든든하고. 큰 형님, 믿습니다. 하하하.”

이 대목에서 문지가 쓰게 웃었다.

‘ 어머, 얘 좀 봐. 텔레비전을 비난하는 것처럼 하네. 후후. 저도 텔레토비 되게 좋아했으면서. 빅 브라더만 있는 건 아니야. 텔레비전은 많은 사람들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한 공로도 있단다. 달 착륙 과정을 전 인류가 앉아서 보았잖아. 그러니 바보상자만은 아니야. 바보로 만들려는 사람들, 바보가 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 우디야.’

타자기부터 텔레비까지... 우디 노트는 생각보다 많은 기억을 담아내고 있었다. 또래 나이 이상으로 나름의 비판의식도 있는 것 같다. 그게 신기했다. ‘ 누가 도와준 건가?’ 문지가 우디를 걱정한 것은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문지는 남은 노트 두께를 보았다. 아직도 제법 남았다. 문지는 노트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바깥 창을 보면서 잠시 눈을 풀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린 왕자 목각상이 들어온다.

‘나의 어린 왕자님... 잘 크고 있어줘서 고마워. 후후’

노타모레가 과거에 타자수 아가씨 그리고 텔레비를 보고 품었던 불안감은 점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또 다르게 바뀌었다. 텔레토비 요정들은 한때 힘을 구가했지만 그들도 곧 위기의 시간이 왔다.

한 세기가 바뀌고 회사에는 책상마다 컴퓨터라는 것이 설치되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이젠 학생들까지 휴대용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실 노타모레는 노트북을 처음 봤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노트가 북보다 앞에 들어갔으니 어찌 신나지 않을까. 이번엔 노타모레가 부키를 찾아갔다. 국립대 문헌학 교수의 서재였다. 거기도 여지없이 컴퓨터와 노트북이 보였다. 부키의 날개에 문자 문양이 조금 옅어져 있었다. 노타모레가 조금 흥분해서 노트북 화면과 키보드를 가리키면서 부키에게 말했다.

“부키, 노트북 이거 대단하지... 매끄럽고 유연하고 완벽해. 얼룩도 없어. 나 봐, 내 몸에도 얼룩이 없어졌어. 거기다가 인간들은 이제 노트가 북보다 먼저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거 같아. 노트북이라잖아. 노트북. 킥킥. 나 저리로 이사 갈까 봐. 히히.”

부키는 그런 노타모레 반응에 시큰둥했다. 부키는 처음에는 노트북을 보고 질색했다. 클래식한 품위가 없고 페르푸메도 없었다. 그것은 온통 가식투성이로 보였다. 그러나 노타모레는 노트북을 보고 노트의 진화가 시작된 거라고 생각했고 차원이 다른 노트 세상이 열린 것처럼 기뻤다. 착각도 있었으나 완전히 틀린 전망은 아니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노트북은 편리한 노트 수단이었다. 점점 노트의 자리는 노트북의 노트 프로그램이 대신하게 되었다. 노트 기능을 장착한 프로그램은 다양한 서체를 내놓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붙일 수도 있는 도구 기능을 더했다. 게다가 마음껏 삭제 첨가 편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노트북에 토-토-톡 쉽게 쓴 글을 타-라-락 쉽게 지웠다. 방금 생각한 내용을 빨리 적고 지울 수 있어서 편리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원고지에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써 넣을 때처럼 깊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부키가 본 미세한 틈이었다.

‘ 저 편리함의 독! 노타모레는 이게 안 보이는 모양이지.’
부키는 노타모레의 무신경에 불만이었다. 부키는 서운했다. 부키가 흥- 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노타모레는 역시 예민한 요정이었다. 처음의 흥분은 이제 가라앉았다. 노타모레는 곧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노트북엔 사색과 감정의 페르푸메를 뿜을 수 없던 것이다. 다시 부키를 찾아갔다. 책꽂이에 책 몇 권 달랑 있는 한 대학생 방의 책 속에서 부키를 찾은 노타모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상한 걸. 노트북에는 왜 스며들 수가 없지? 저건 마치 물속에 비친 미녀 피부 같아. 분명히 보이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

“이제 알았어? 노트북은 노트도 아니고 북도 아니야. 그냥 기계라고. 그림자 머신. 그 이유가 뭘까? 이 바보야.”

부키는 비웃음과 고소함의 미소를 날리며 피곤하다고 책 속으로 쓱 들어갔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 있는, 20대 대학생이 보내온 노트. 바쁠 때는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시험공부나 중요한 메모를 할 때는 무조건 아날로그 노트를 사용한다. ©김현태

노타모레는 외로워졌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원인을 알아냈다. 페르푸메 문제였다. 과거에 부키에게 불안을 말했던 노타모레가 왜 이것을 빨리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오히려 부키가 이번엔 문제를 먼저 인지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서체를 만들었지만 그리고 아름다웠고 편리했지만 그 체에는 쓴 사람들 수억마다의 고유한 개성이 없었다. 노트에는 종이에 있는 수많은 틈에 사람들의 손때와 잉크나 목탄이 더해져 페르푸메의 향기가 쌓여 더욱 진해졌던 것이다. 거기서는 글쓴이의 한숨과 분노, 기쁨도 묻어났었다. 노트북의 워드 프로세스로 작성한 글은 손으로 쓴 글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직접 써야 할 글을, 누군가 대신 미끈하게 써준 대필 연애편지 느낌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이것뿐일까?’

노타모레는 얼마 후부터는 연필과 종이가 부딪치며 화음을 내는 종이 노트에 붙어 있게 되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노트북이 늘어나면서 숲에서 오는 요정들의 숫자도 줄기 시작했다.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싫증을 잘 내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커다란 노트북의 워드 프로세스도 너무 크고 늦다며 타박하기 시작했다. 전화도 집 밖에서 걸으며 하고 싶어 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노트북은 이제 성인 남자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졌다. 전화기가 거기에 붙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손 전화, 즉 핸드폰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손전화기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었다. 휴대용 컴퓨터 즉 핸드컴이었다. 핸드폰 안에는 어마어마한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책도, 사진기도 심지어 은행도, 방송국도, 학교도 있었다. 작아질수록 휴대 유희성, 기능성은 더 커진다. 그 작은 것이 온통 인간의 관심을 다 빼앗아가고 있었다.

‘ 이제 인간은 충분히 봤다. 이대로라면 핸드폰은 더 작아질 것이다. 결국은 시계나 안경으 로 들어가겠지... 어쩌면 인간의 몸 자신이 기계가 될지도 몰라. 그럼 기계인간?’

노타모레는 답답했다. 부키는 요즘 잘 만나주지 않았다. 노타모레는 그 이유를 안다. 요정은 요정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다. 허세 부키는 늙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변한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위대한 기억의 나무가 떠올랐으나 여전히 답은 없었다.

‘인간들은 왜 자꾸 더 빨라지려고 하는 걸까? 빨리 가면 빨리 끝날 텐데...’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만족하는 방법인데 인간은 그걸 망각한 걸까. 인간 현자들은 왜 침묵할까. 그런 노타모레에게 오랜만에 부키가 찾아왔다. 확실히 늙어 있었다. 부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거북목이라고 들어봤어?”
노타모레가 마주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 목 같은데. 히히. 엄지족은 들어봤겠지?”
부키가 화를 냈다. 부키는 아직 허세를 부렸다.

“장난하지 마. 노타모레. 나 심각해. 거북목과 엄지족... 그것도 진화라면 우리도 또 한 번 진화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 말에 노타모레가 유선무늬 눈을 빛냈다. 부키가 보니 거기에는 ‘그러지 않기를’ 이라고 쓰여 있는 것만 같았다. 노타모레가 차분한 소리로 말했다.

“부키. 우리는 페르푸메를 만들어 인간을 변화시킨 위대한 요정이야. 제발 서두르지 말자. 두 별 이야기 해줄까?”
“뭔데?”
노타모레는 대답대신 펜을 들어 허공에 글을 썼다.

한 별은 엄청나게 빨리 우주를 날고 싶어 했고, 다른 한 별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지. 엄청나게 빨리 우주를 날은 별은 금세 타 없어졌어. 그걸 혜성이라고 불러. 그리고 다른 한 별, 제자리를 지킨 별은 항성이라고 해. 부키, 너는 어떤 별이 되고 싶어?

부키가 침묵했다. 날개에서 간만에 문자들이 흘러내렸다.

©김현태

안녕하세요 저는 25살 대학생 김현태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편인데,
시험기간이나 중요한 메모를 해야할 때는 무조건 노트에 필기해서 공부를 합니다!
집중해서 하느라 펜을 너무 세게 집어서 오른손 중지에 굳은살이 박혀 손이 못난이지만..^^;;
그래도 항상 노트에 필기하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

펜과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 때문에 아날로그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디지털이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이러한 이날로그 감성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심심할 때 취미로 캘리그라피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둘 씩 써가다보면 어느 순간 제가 가득 담긴 캘리를 쓰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연재기간 중 좋은 노트 습관을 가진 분의 기고, 종이노트로 달라진 사례, 자발적인 샘플 노트 사진을 열린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관련 내용을 오피니언타임스 이메일(news34567@opiniontimes.co.kr)로 보내주시면 <노트의 요정> 연재 중이나 이후 보도해드립니다.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현태, 7321디자인, 황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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