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은 건전한 곳도 있지만 허위와 과장, 조작과 사기, 선정과 음란 등 온갖 사회적 질병들이 만연돼 있다. 이념과 지역, 정당 등 대립구조와 관련된 공간이 특히 그렇다. 인터넷이 건전한 담론의 장이 되어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라는 말은 오래 전에 역설(逆說)이 되었다.

국민적 의혹사건으로 비화한 ‘드루킹’ 댓글 공감 수 조작 사건은 이런 병적 현상의 최신 버전이다. 이 사건은 종전의 진영 대결 패턴이 아니라 같은 진영 내부에서 발생한 자해 조작이라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김모 씨(48)’로만 알려진 주범 드루킹은 민주당 당원이자 같은 당 김경수 의원과의 친분으로 작년 대선 기간 중에 문재인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으나,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때 포탈 네이버에서 남북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댓글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댓글조작사건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반대진영의 소행으로 잘못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김 씨의 신원이 당원으로 밝혀짐으로써 당혹스럽게 됐다. 당장 6월의 지방선거의 최대 악재로 부각되면서 당혹감은 커지고 있다.

©픽사베이

이 사건에서 드루킹과 김 의원, 나아가 문재인 후보 또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연계가 존재한다면 사건은 민주당이 적폐청산 차원에서 단죄한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군 사이버사 댓글사건과 성격이 같아진다.

당혹스럽기는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사건이 김경수 의원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게 된다면 정치적 파장을 감당키 어렵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댓글 추천 수 조작에 국한하려 하고 있지만 김 씨가 대선 기간 중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국민들에겐 더 관심사가 됐다.

이 사건은 인터넷이 건전한 여론 형성의 마당이 되지 못하는 원인이 정치제도에서 연유함을 생각하게 된다. 정치는 사회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우리는 분열을 조장하는데 앞장선다. 없는 갈등도 만들어 내고 있는 갈등은 최대한 벌려놓는다.

그것이 자기편을 넓히고 단단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기승을 부리는 기회가 선거다. 여기서 인터넷과 SNS는 분열과 갈등을 신속화 최대화 할 수 있는 유효한 도구로 이용된다.

선거에서 표를 얻는 방법이 과거에는 고무신과 막걸리였다면 지금은 효과적인 홍보다. 홍보 수단도 종전에는 신문과 방송이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소통효과가 직접적인 인터넷과 SNS다.

인터넷 기술의 빠른 개발 속도만큼이나 조작의 기술도 빠르다. 법의 규제가 미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도처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질병을 일으키는 온갖 세균들이 창궐하는 토양이 된다. 일부 불법적인 세력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세를 형성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수많은 추종세력을 앞세워 선거판에 끼어든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에게 이들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드루킹도 그런 시대가 만들어 낸 병균 중의 하나다.

그런 병균을 번식시키는 촉매가 익명제다. 이 촉매만 제거되어도 병의 증상은 완화될 수 있다. 익명은 실명보다 4배 이상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터넷 실명제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그럼에도 그들 중 대부분은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한다. 김 의원도 그 중의 하나다.

아무리 인터넷에 올리는 글에서부터 댓글 그리고 댓글의 추천 수까지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라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런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장난처럼, 또는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라며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명제를 해야 할 당위다.

사법당국과 포탈들은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하고, 특히 포탈의 기민한 대응을 법이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드루킹 사건에서 클릭을 자동으로 실행케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 조작에 기술적 대응을 못한 포탈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터넷 댓글을 언제까지 여론의 하수구로 방치할 것인지 정치권이 결단할 일이다. 익명보호라는 허울 속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농락당하는 사태는 끝내야 한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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