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노트의 요정
노트의요정7_사막의 샘을 꿈꾸는 문지[‘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써니 | 승인 2018.04.19 11:51

7. 사막의 샘을 꿈꾸는 문지 

시대마다 기록과 기억을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하여 기억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네마조네스 이전 과거 시대에는 주로 일기라는 방식으로 남겼다. 그런 일기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소녀, 안네가 있었다. 유대인이었다. 게르마니가 국가적으로 아주 야만적인 학살 행위를 할 무렵,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피신한 소녀는 다락방에 숨어서 2년간 일기를 썼다. 13살에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서 종이의 강인함을 발견했다고 쓸 정도로 일기를 사랑했다. 답답하고 외로운 다락방, 그 폐쇄된 삶 속에서도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춘기 소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혜는 소녀를 매료시켰다.

소녀의 삶은 비록 변화없고 늘 건조한 사막 같았지만 어딘가에 샘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이미 작가라고 말했다. 다락방 소녀의 일기에는 정령이 깃들어 살았다. 그 일기 정령은 아주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요정들의 먼 방계요정이었다. 어두운 다락방에 살기를 좋아하는 정령인데 그 정령때문에 인류는 외로운 이들의 일기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령은 유대인 소녀의 목숨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소녀는 결국 다락방에서 발각되어 수용소로 끌려갔다. 일기는 정령이 지켜주었다. 세월이 흘러 그 일기를 한국소녀 문지가 읽게 되었다. 문지는 목이 길고 눈이 맑은 17살 소녀였다. 문지가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순결한 눈물을 흘리던 그 때, 잠자던 정령은 일기에서 깨어났고 순결한 눈물을 타고 문지에게로 옮겼다.

©픽사베이

친구들은 문지를 ‘노트꽁주’라고 부른다. 가끔 어이없는 일, 이를테면 누가 문지의 노트를 슬쩍 훔쳐본다든가 문지가 선물한 책에 대해 읽은 소감을 말해주지 않는다든가, 또는 과거에 같이 했던 기억을 잊는다든가 하면 아주 꽁하게 굴기 때문이다. 문지는 알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요절한 시인의 시를 필사하기도 하고, 먼 곳을 상상하고, 어느 날은 어린왕자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사막 어딘가에 샘이 숨어져 있기 때문이야” 라는 구절을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문지는 그 샘이 지혜와 기억의 샘 미미르와 닿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막만 있고 보이지 않는 샘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겠어.’

안네처럼 문지도 언젠가는 꼭 사막에 가보리라 샘을 찾으리라 꿈꾸곤 했다. 길을 떠나는 카라반과 적막한 사막에 울려 퍼지는 낙타 방울소리, 밤에는 차갑게 식은 사막을 별들이 지키고, 묵묵히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는 선인장, 세상의 지혜를 간직한 여우와 뱀, 그리고 어느 날의 불시착과 낯선 만남. <어린왕자>는 문지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이야기였다.

문지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했던 것이다.
“어머, 얘가 내 이름을 써놓았네. 그러면서 이런 글을 쓴다고 말도 안 하고!”

말은 그렇게 해도 문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디가 이렇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니.
‘그런데 꽁주라고. 후후. 내가 그랬나?’
‘내가 사막을 꿈꿨던 건 어떻게 알았지? 아, 거실에 어린 왕자 목각...’

소녀의 일기는 문지에게 충격을 줬다. 소녀는 자신의 일기장을 친구처럼 키티라고 이름을 불렀고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는 글도 썼다. 13살 소녀가 참고 견딘다는 말이 문지는 슬펐다. 다락방, 창백한 얼굴의 외로운 소녀, 비참한 수용소가 떠올랐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느 날은 문지가 다락방에서 일기를 쓰는 꿈을 꾸기도 했다. 소녀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 무엇인가가 맑은 것이 자신에게로 옮겨온 것 같았다. 이후로 그 일기 소녀를 그렸다. 긴 흑발 머리에 창백한 얼굴, 그러나 샘처럼 맑은 눈으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소녀다. 소녀의 가는 허벅다리에는 한 그루 큰 나무를 배경으로 별과 뱀 그림을 그렸다. 하늘에 떠있는 별, 어두운 곳을 기는 뱀. 소녀 그림을 본 친구들이 그 부조화에 대해서 물어보면, 문지는 “그게 사막과 샘이야. 잊지 않으려고.” 라고만 대답했다.

사막과 미미르 그리고 어린왕자, 꿈에서 본 소녀에 이르기까지 문지가 아끼고 좋아했던 것은 모두 하나의 의미로 통했다. 그건 꿈꾸는 영혼에 대한 갈구였다. 문지는 비어있는 노트 안을 상상으로 채우고 의미를 더하면 먼 어떤 세계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노트에 글을 쓰기 전 연필을 삭삭 깎다보면 어느 새 여행자 마음이 되었다. 연필은 나침반, 노트에 글을 쓰는 행위는 사막 여행과 다름없었다. 문지는 학교 도서관에서도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서도 노트를 펴들고 글을 썼다. 술술 글이 써지는 날이면, 어쩌면 자신이 아니라 어디선가 노트의 요정들이 날아와 대신 써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이렇게 멋진 생각을 혼자서 할 리가 없어. 뭔가 이 안에 요정이 나의 생각에 숨을 넣어주고 글을 이끌어 주는 걸 거야. 흠... 이 냄새, 혹시 요정이 뿌리는 향은 아닐까?”

문지는 노트의 요정, 책갈피의 요정이 사막의 별처럼 어디론가 자신을 데려다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비록 노트 안에서였지만 노트는 문지의 상상력을 차고 세상 어디로도 날아갈 수 있었다. 문지에게는 늘 풍부한 페르푸메의 향이 났다. 습작 노트에 글을 쓰고 책도 읽으면서 물론 노트북 메모도 했다.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준 노트북은 빠르고 편리했다. 문지는 노트북 메모를 하면서 향을 느끼려했지만 그것은 어려웠다. 네마조네스는 자신을 찾아온 소녀, 문지를 안다. 일기소녀 이야기도 다락방 정령을 통해서 들었었다. 문지가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네마조네스는 문지에게 뿜어 줄 페르푸메가 없었다. 네마조네스가 두 요정에게 문지 이야기를 전해줬다. [논객닷컴=써니]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써니  news34567@nongaek.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써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405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19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