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주 부인 조신자 KAI로 부터 2억원 빌려다 갚지 않아... "안 갚아도 되는돈"

2004~2008년 KAI에서 사장과 경영관리본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정해주 전 사장과 하성용 전 사장이 법정에서 증인과 피고로 만났다. 사진은 정 전 사장(왼쪽)과 하 전 사장ⓒ국무조정실, 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정해주 전 사장, 하성용 전 사장, 이동신 전무 등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거물들이 법정에서 만났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제21부(조의연 재판장)는 지난 18일 KAI 경영 비리 10회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피고는 하 전 사장과 이 전무다. 증인으론 정 전 사장과 그의 부인 조신자씨가 나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정 전 사장은 행시 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특허청장, 중소기업청장, 통상산업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진주산업대 총장 등을 지냈다. 2000년과 2004년엔 총선에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정 전 사장은 KAI 사장으로 2004년 10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재직했다. 이 시기 하 전 사장은 경영관리본부장, 이 전무는 재무실장으로 정 전 사장을 도왔다.

그는 KAI를 지휘할 때 경남 사천시로 본사를 옮겼고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37번이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항공기 수출에 힘썼고 재무구조 개선도 이뤄냈다. 삼성항공우주산업,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등 출신 회사별로 나뉘었던 조직을 다잡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이 전무가 2006~2008년 환율조작과 상품권 깡으로 마련한 비자금 13억여원 중 일부를 정 전 사장이 챙긴 게 아닌지 물었다. 검찰에 따르면 하 전 사장은 이 전무가 정 전 사장에게 돈을 줬다고 했다. 이 전무는 돈이 하 전 사장에게 갔다고 했다.

아울러 검찰은 이 전무가 2015년 감사원 감사 때 하 전 사장을 보호하려고 비자금 조성 원인을 정 전 사장에게 돌렸다고 했다.

정 전 사장은 검찰 질의에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환율조작과 상품권 깡 등을 이 전무로부터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회계 처리되지 않은 ‘현금성 경비’를 이 전무에게 받아 쓴 것은 인정했다. 현금성 경비는 KAI 직원 격려금, 외부 경조사비, 해외출장 시 소지하는 봉투 등을 말한다고 했다. 액수는 기본적으로 내부 50만원, 외부 100만원이라고 했다. 특별한 경우 200만~300만원도 썼다고 했다.

정 전 사장은 해외 출장 땐 5000달러 정도를 가져가서 외국인 에이전트, 장성 수행원, 현지 KAI 지사 직원 등에게 줬다고 했다. 한 달에 10차례는 현금성 경비가 나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KAI를 위해 현금성 경비를 사용했다고 했다. 재무구조가 부실하고 실적도 약했던 데다 내부 파벌까지 있었던 KAI를 이끌려면 돈을 써야 했다는 것이다. 하 전 사장, 이 전무가 “KAI를 살리기 위한 지출은 언제든 환영하겠다”며 자신을 뒷받침했다고도 했다. 

검찰은 “증인이 KAI 사장으로 있으면서 쓴 현금성 경비가 4억~5억원 정도”라며 “이걸 제하면 이 전무가 만든 비자금이 8억원가량 남는다. 증인이 썼나”고 했다. 정 전 사장은 “그런 (불량한) 양심은 없다”고 했다. 그는 “증인뿐 아니라 하 전 사장, 이 전무도 안 썼다고 한다. 누가 쓴 거냐”란 물음엔 “모른다”고 했다.

정 전 사장에 앞서 조신자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다. 검찰에 의하면 조씨는 정 전 사장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2005년 상반기 하 전 사장에게서 현금 2억원을 빌렸다. 이 돈은 KAI에서 나왔다. 조씨는 돈을 갚지도 않았다. 사장 부인이 회삿돈을 유용한 셈이다.

조씨는 “선거로 빚을 많이 져서 갚아야 했다”며 “하 전 사장이 재무 담당이고 (돈을 빌려줄) 능력이 있을 것 같아 자금 융통을 부탁했다. 회삿돈이 아닌 하 전 사장 개인 돈을 빌려달라 한 것”이라고 했다. 하 전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면서 돈을 빌릴 생각을 했냐는 질의가 쏟아졌지만 그는 “능력이 되시니까”라고만 했다.

이어 조씨는 “분당 집까지 하 전 사장이 직접 현금을 갖고 왔다. 한 번에 4000만~5000만원씩 들고 온 것 같다”며 “하 전 사장이 안 갚아도 되는 돈이라고 해서 상환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 전 사장 변호인들은 조씨를 강하게 압박했다. 언성을 높이면서 조씨의 말을 끊거나 반복적 질문으로 사실관계를 계속 추궁했다. 조씨도 “기억 안 난다”, “왜 따지나”, “돈 빌린 게 죄냐”, “이상한 꼬투리 잡지 마라”고 받아쳤다. 이 과정에서 분위기가 격앙돼 조의연 재판장이 제지하기도 했다.

조씨는 “남편은 돈 빌린 걸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후 같은 질문을 받은 정 전 사장도 “(선거 자금은) 아내가 알아서 했다”며 “일일이 묻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인은 “하 전 사장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진 않았나. 혹시 그가 청탁이라도 했나”라며 “지금이라도 갚을 마음이 있나”고 따졌다. 조씨는 “안 갚아도 되는 줄로만 알았다. 따로 청탁은 없었다”며 “본인(하 전 사장)이 말 않는데 제3자(변호인)가 왜 끼나”고 맞섰다. 하 전 사장은 피고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다음 공판기일은 오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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