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칼럼 제목은 015B가 부른 ‘아주 오래된 연인들(1992)’의 패러디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로 시작하는 노래는 연애 기간이 길어져 서로 심드렁해진 연인들의 심리를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게 쇄신할 생각은 없이 흘러간 레퍼토리만 반복해 틀어대는 우리 보수우파랑 꽤 닮았다. 무엇이 어떻게 닮았나.

지난 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한민국 수호 비상국민회의’ 창립대회가 열렸다.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는데, 이 모임의 성격은 참석자들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송영선 전 국회의원, 노재봉 전 국무총리,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심재철 국회 부의장…. 내로라하는 보수우파 인사들이었다.

이렇게 대규모로 범우파가 결집한 건 오랜만이었다. 혹시 참신하고 색다른 의제가 제시되는 건 아닐까 했다. 가령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인 2000년대 중반 벌어진 뉴라이트 운동 같은 것 말이다. 일말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20일 열린‘대한민국 수호 비상국민회의’창립대회에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참석하고 있다. ©유튜브, 엄마방송 캡처

비상국민회의 창립 선언문은 “건국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로 시작한다. 그 이유는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했는데 정권을 떠받치는 광범위한 좌파 세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체제 변혁과 국가 파괴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의문에는 “헌법은 자유민주 흡수통일을 명령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이를 포기하는 건 헌법위반이다”란 대목도 있다. 헌법 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추진)를 이렇게 독창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날 발표된 선언문, 결의문, 문재인 정권에 대한 촉구에서는 이런 과격한 색깔론이 시종일관 제기됐다. 색깔론으로 시작해 색깔론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보수가 헤매고 있는 이유가 뭔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그것은 보수우파가 빛바랜 지 오래된 색깔론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위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다.

대략 2016년 4·13 총선을 기점으로 색깔론과 지역주의는 현저히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보수우파가 과장·비약과 억지, 비논리로 가득 찬 색깔론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달콤한 옛 추억을 못 잊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좌파·빨갱이로 몰아 손쉽게 제거했던 추억 말이다. 이 말은 새로운 의제를 찾아 나서기에는 보수가 너무 게을러졌다는 말도 된다.

그런 점에서 비상국민회의는 대한민국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보수의 위기’를 고백하는 자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이런 원색적 비난에 공감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내놓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 공감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생뚱맞은 색깔론을 일삼아 제기하는 것도 그 증거다. 공감능력을 잃은 보수는 극우로 치닫기 쉽다. 변화를 통해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오로지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정은의 핵실험 중단 선언을 두고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쇼와 무엇이 다르냐”(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반응이 나온다. ‘냉각탑 운운’은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충고라기보다는 변화하는 북한 현실에 대한 의도적 외면과 비아냥에 가깝다.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과 6월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이뤄지면 이것 역시 보수에게는 위기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상태가 지속될수록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챙길 수 있었던 게 보수우파였기 때문이다.

위기 속 보수가 맨 처음 했어야 할 일은 ‘처절한 반성’이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자유한국당에 이렇게 말한다. “야당도 국정운영의 중요한 축이었다. 총체적 통치 실패에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침묵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윤 교수는 또 “해체에 준하는 전면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도 현재론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시민들이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구분하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무분별한 색깔론을 스스로 걸러낼 만큼 성숙했다. 보수 식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많은 보수주의자들 가운데서 가짜 보수, 보수 참칭자를 가려내야 한다. 툭하면 색깔론을 꺼내드는, 공감능력이 없는 소수 집단에 의해 과잉 대표되고 있는 보수의 가치를 복원시켜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건 편협하고 자기 잇속에만 민감한 보수가 아니라 인간의 따뜻한 온기를 지닌 보수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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