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가작]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이제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난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처음 분홍이라는 말을 꺼낼 때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난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란색을 좋아해야만 했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지 예뻐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해 보이고 싶었지 연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전히 나의 파란가면을 위해 분홍마음을 숨겼던 것이다. 그 결과 내 방과 몸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파란 침대와 커튼 그리고 파란 모자와 바지를 매일 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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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파랑 타령을 했을까. 감히 짐작건대 여성성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얼굴을 하고 여성의 몸을 갖고 있는데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낯을 가리지 않는 호탕한 성격인 척을 해대면 파운데이션을 바른 것처럼 내 민낯을 가릴 수 있었다. 거기에 분홍색을 싫어하는 척과 파란색을 사랑하는 척까지 하면 컨실러까지 칠한 듯 완벽하게 가면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착각이었다. 나 혼자서만 가면을 제대로 썼다고 생각한 것이다. 숨바꼭질을 하는데 내 눈만 가리고 다 숨었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자꾸만 분홍색에 눈이 갔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면서까지 파란색을 찾았지만 마지막 내 눈길이 닿는 곳은 여전히 분홍빛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분홍색 핸드폰을 샀었다. 그래도 난 파란색이 좋다고 열심히 떠들었다. 그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로. 그리고 분홍색 가방을 샀다. 분홍색 티셔츠와 노트북 케이스도 샀다. 지금은 분홍색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러자 주변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도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게 창피한 것이 아니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색깔에 서열을 부여하고 있었던 듯싶다. 분홍색은 섬세하고 부드럽고 잔잔하지만 파란색은 활기차고 외향적이고 당당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색깔이 주는 고정관념이 편견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남성성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성이 주는 은밀한 권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결국 파란색이 주는 편견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제대로 말하려고 한다. 난 지금도 파란색을 좋아한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러니까 파란색‘만’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는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색깔에도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다른 색깔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라색도 초록색도 노란색도. 모든 색을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 편견을 다 깼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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