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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만난 노인의 고백[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이호준 | 승인 2018.04.27 09:19

[논객닷컴=이호준] 언뜻 봐도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오랫동안 볕을 못 본 것처럼 창백한 얼굴, 굽은 등과 어깨… 세상 구경 처음 나온 아이처럼 자꾸 두리번거렸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디쯤 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는 제 자리인데요?” 이 말을 입안에 몇 번 굴리다 옆자리에 그냥 앉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타는 무궁화호 열차였습니다.

일부러 창가로 예매한 내 자리에 그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왜 남의 자리에 앉는 걸 예사로 안담? 창가자리에 앉고 싶으면 표를 끊을 때 그렇게 달라고 하든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 게 전부였습니다. 특별히 중요하지도 않은 걸 따지다가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얼굴이라도 붉히면 가는 내내 얼마나 불편할까요.

노인이 말을 걸어온 것은 열차가 출발한 직후였습니다. 사실 말을 걸어왔다고 하기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앞을 보면서 중얼거리듯 몇 마디 했으니까요.

“이젠 기차 타는 게 재미없지 않아요?”

“……?”

“옛날이 좋았어요. 완행열차는 복잡한 맛도 있어야 하거든. 서로 좀 부딪치기도 하고… 빠른 것만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나마 무궁화호 열차가 남아 있는 게 참 다행이긴 하지만… 이건 적자가 좀 나도 계속 운행했으면 좋겠어요.”

©픽사베이

저는 다시 한 번 노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대체 밑도 끝도 없는 이 이야기가 왜 나온담? 한데, 어쩌다보니 노인이 툭툭 던진 말에 휘말리기라도 한 듯 대화 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완행열차의 정겹던 추억을 꽤 그리워하는 터라,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습니다. 이번엔 제가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대전에 갑니다.”

“거기가 댁이세요?”

“그쪽은 고향이고 의정부에 살아요. 모처럼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겁니다. 그동안 앓느라고 꼼짝을 못했거든요. 등산가는 길에 차에 치여서 갈빗대가 여덟 개나 부러졌어요.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지요.”

노인은 한참 젊은 제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습니다. 한 마디로 ‘점잖은’ 노인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다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비 오는 날 종각역 계단에서 굴러서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어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초등학교 3, 4학년 때는 지붕에 널어놓은 대추를 훔쳐 먹으러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노인은 자신의 굴곡 많았던 삶을 가닥가닥 풀어냈습니다. 사실 노인의 진짜 불행은 떨어지고 구르고 차에 치인 데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실 잣듯 이어졌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를 제법 했어요. 1학년 때부터 6년 내내 반장을 했으니까요. 당연히 중학교에 가고 싶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 몫의 땅을 형님에게 맡겨뒀는데, 그걸 노름판에서 몽땅 날려버리지 않았겠습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까지 시켜주라는 돈이었는데… 그러니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얼마나 분하던지,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형을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돌아서고 말았지요.”

그 말을 하는 노인의 얼굴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타인에 의해 상실된 기회에 대한 아쉬움, 평생 지고 다녀야 했던 가난이 얼굴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뒤 무작정 서울로 왔지요. 어지러운 때이긴 하지만 서울에 가면 공부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어려운 시절에 아이가 혼자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인가요? 길거리에서 자고 굶어가면서도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지 했습니다. 그렇게 몇 푼 모은 걸로 늦게 중학교에 들어갔지요. 노숙을 하며 학교에 다녔어요.”

그때쯤에는 저도 노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 노인의 신산한 걸음 속으로 제 자신이 들어가 분노하고 슬퍼하고 절망했습니다.

“겨울이 가장 힘들었어요. 청량리 시장에서 군용담요를 구해 추위를 견뎠지요. 그래도 너무 추워서 막걸리 장수 아주머니들이 갈고 버린 연탄재를 주워 의자 밑에 넣고 앉아서 밤을 지새웠어요. 어느 날은 담요를 태워먹기도 하고… .배고픈 게 가장 문제였는데, 말 그대로 거지처럼 살았지요. 덕수궁 돌담길에 가면 호떡장수가 있었거든요? 호떡을 주고받다가 바닥에 떨어트릴 때가 있어요. 그럼 슬그머니 발로 밀어서 털어 먹기도 하고….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도 결국 졸업을 못했어요. 정말 중학교까지는 마치고 싶었는데. 그래도요. 그렇게나마 공부를 한 게 평생 따라다닙니다. 안 한 것보다 훨씬 나았지요.”

©픽사베이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노인의 목소리에는 습자지에 번치는 먹물처럼 물기가 어렸습니다. 물론 노인의 고난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가진 것 하나 없이 삭막한 서울바닥을 떠도는 소년에게 구원의 빛이 쉽사리 와 닿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요.

“학교를 그만둔 뒤 어찌 어찌 해서 과일장수를 시작했어요. 리어카 하나 끌고 떠돌았지요.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뼈가 굵어질 무렵 중동 붐이 일면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가게 됐습니다. 최근에 사진을 보니 거기도 엄청 변했더구먼요.”

“그때는 돈 좀 모으셨겠네요?”

“글쎄요. 워낙 없이 시작하다 보니 많이는 안 모아집디다. 그때 돈으로 한 2000만원 모았나? 그걸 밑천으로 평생 산 셈이니, 큰돈이라면 큰돈이네요.”

“결혼도 하고 자제분도 두셨을 텐데… 지금은 누구하고 사세요?”

“예,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지요. 지금은 집사람하고 아들하고 셋이 살아요. 아들은 장가를 안 갔어요. 나이가 쉰여섯인데. 결혼하기 싫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현명한 생각인지도 몰라요. 요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보통 힘드나요? 더구나 성질 나쁜 며느리 얻으면 어쩔 거예요. 없는 것만 훨씬 못하지.”

노인의 이야기가 종점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질문을 더 하면 더 많은 사연을 들을 수 있겠지만, 가슴이 먹먹해서 더 이상은 듣기 어려웠습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인 듯, 몇 마디를 보탰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사람이 살다 가는 거 정말 순식간이거든요. 나만 잘났다고 하지 말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해요. 내가 그 때 홧김에 형님을 칼로 찔러서 죽였다면,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다 죽었을 게 아닙니까. 순간순간 판단을 잘해야지요. 될 수 있으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노인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끝내 침묵 속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습니다. 마치 수천 개의 점멸등을 켜놓은 듯, 온갖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명멸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노인의 궤적이 고스란히 제 아버지, 형님들이 살아온 근현대사입니다. 역사의 기술이 평면적이라면 이분들의 증언은 훨씬 생생하고 입체적이지요. 이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나라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세대 간 갈등이란 말도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이 곧잘 노인을 무시하고, 심지어 효용이 다 된 폐물 취급을 하는 세태가 됐습니다. 일부 노인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외면한 채 젊은이들을 윽박지르려 들기 일쑤고, 때로는 폭언을 일삼기도 합니다. 갈등의 폭은 갈수록 넓어질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노인과 젊은이는 적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야 할 가족입니다. 앞서 걸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배울만한 지혜를 가졌다는 뜻이고, 누군가 뒤에 걸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든든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갈등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그날 제게는, 가시밭길을 걸어온 한 노인의 삶이 살아있는 교과서였습니다. 그리고 별 노력 없이 안온한 삶을 이어받은 저 자신이 부끄러워진 날이었습니다. 좀 긴 이야기지만 굳이 이곳에 전하는 이유입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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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sagang58@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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