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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요정11_기록을 지우는 자, 유모리몬[‘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써니 | 승인 2018.04.27 11:05

남해와 서울을 잇는 두 사람의 이 비밀스런 통신이 일어난 이후, 세상에는 신비하고도 괴이한 변종 요정이 생겨났다. 네마조네스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그 변종 요정의 탄생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불안하게 보고 있었다. 네마조네스가 예전에 문지의 가방으로 부키와 노타모레를 찾아간 바로 전부터 네마조네스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정이 인간세계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었다.

‘ 이들도 요정일까?’

원래 요정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것, 태고의 신들이 작아진 것, 멸망한 옛날 종족의 기억과 죽은 자의 영혼, 타락한 천사 등에서 기원하는 것이니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요정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니 이들도 요정은 요정이라고 네마조네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위험한 요정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괴물이 되어 탈출한 것이다.

후일 요정 세계에서는 요정들의 분리시기를 1차와 2차로 구분하는데, 노타모레와 부키에서 분리한 네마조네스를 1차 분리로, 연구소 프로그램에서 변종된 요정 몬스터를 2차 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2차 분리는 워낙 특이하고 위험하여 다른 말로 변종 분리 또는 단절 분리라고도 불렀다. 사람들 중에 그 요정의 실체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프랑켄쉬타인 요정, 검은 백조가 출현한 것이다.

요정 몬스터는 연구소에서 탄생했으므로 핀란드 자작나무 숲과 위대한 기억 나무에 대한 기억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그들은 기억과 기록을 부정하고 태어난 요정들이었으므로 그런 기억자체가 무의미했다. 요정 몬스터들은 시각적 이미지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세상에서 문자 기록은 가치가 없다고 단정했다. 부키와 노타모레는 경악을 했다.

“ 뭐라고? 기억 없는 존재가 과연 가능하다고 보나.”

그러나 요정 몬스터들은 단호했다.

“ 그대들은 꺼져주시오. 세상에 헛된 기록만 남겨 세상을 혼란과 거짓에 빠뜨린 낡은 요정들이여. 기록한 자들은 세상의 더러운 손이며 역사의 죄인들이오. 카카카.”

부키와 노타모레는 어이가 없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뭐라고, 그런 궤변이... 족보도 모르는 너희 프로그램 따위가 세상의 구성 원리를 뭘 안다고 감히.”

비교적 온건한 노타모레도 이 괴물들한테는 분노했다. 이런 경우는 상상도 못했다.

‘ 기억을 부정하다니.’

그러나 소용없었다. 가을은 겨울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차가운 이성을 가진 그들 요정 몬스터들은, 기록은 게으른 자, 과거에만 빠져 사는 자들의 도구일 뿐이므로 위험하고 더럽고 추한 기억과 기록은 모조리 다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억이 없는 세상이 곧 평화다. 그들이 괴로운 기억에서 인간들을 해방시킬 거라고 단언하면서 요정 세계는 충격을 받았고 이내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변종인 요정 몬스터는 노타모레, 부키, 네마조네스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세 요정은 설득도 해보고 협박도 했지만 완강한 요정 몬스터에게 소용이 없었다. 요정 몬스터들은 일단 사이베르에서 독립해 나갔다. 요정 몬스터들의 독립선언은 혁명적이었다.

문자는 나태한 자들이 만든 악의 기록 저장소다. 문자는 인간을 서로 차별하게 하는 구속의 기제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세계로 가야 한다. 텅 빈 백지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의 상태만이 우리가 건설할 멋진 신세계다. 과거 때문에 고통 받고, 과거 때문에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세상을 문자와 기억에서 해방하자.

선배 요정들은 흥분하고 격노했다. 그들은 전쟁을 선포했다.

노타모레와 부키, 네마조네스는 변종 요정 몬스터를 그들 출생처럼 유모리몬(Umory Mon)이라고 불렀다. 없음(U)과 메모리(Memory) 그리고 괴물(Monster)이란 단어를 조합하여 기억과 기록을 지우는 괴물 요정이라는 뜻이다.

망각의 요정 유모리몬 ©김한 7321디자인 대표

그들이 사이베르 세상에서 나가고 얼마 후 첩보들이 들어왔다. 애초 프로그램 상태였던 유모리몬은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동자가 흐렸는데 이미 눈동자가 없어진 종도 나오고 있으며 검은색 짧은 망토를 입고 다닌다고 했다. 악어처럼 튀어 나온 입에서는 안개 냄새가 나는데, 유모리몬이 지나는 자리마다 연기가 남는다고도 했다. 그들에게는 요정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우아함, 아름다움은 없었다. 그들은 늘 정보를 찾아 악어 입을 킁킁거리며 다녔다. 그들 유모리몬은 기억 청소론을 주장했다. 문자도 사라지도 기억도 없어진다면 세상의 온갖 차별과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자부했다. 심지어 치매에 걸린 인간 노인들을 ‘드디어 완성에 이른 자’라고 칭송했다.

‘ 난 알고 있었는데... 알리지를 못했다.’

네마조네스의 고민은 깊어갔지만 그 이유를 내색하지는 못했다. 노타모레와 부키는 유모리몬의 사상과 행동을 심각하게 우려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부키는 유모리몬의 주장이 그렇게 터무니없진 않다고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의외였다. 노망이 든 걸까. 부키는 노타모레와 네마조네스를 만나 한탄을 했다. 한탄이지만 사실 그것은 허세 병의 도짐이었다. 세상의 죄가 다 내 탓이라는 영웅 병.

“ 그들 말이 맞을 지도 몰라. 휴. 세상에는 일부러 왜곡된 사실을 담은 글도 있었고, 거꾸로 진실의 글을 사람들이 왜곡해서 해석하기도 했어. 맞잖아?”

그 말에는 노타모레도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 노트에 글들도 꼭 아름답거나 진실인 것만 담지 않았어. 욕과 저주, 엉터리 기록들이 많았지. 문지 같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뿐만이 아니야. 음모와 도시 괴담 같은 악한 글일수록 빠르게 퍼져나가. 우리가 그런 글들에 페르푸메를 뿜은 거야. 그런 글도 글이니까. 글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기록을 지우고 싶어 해. 유모리몬들을 환영하는 인간들은 생각보다 많을 거야. 유모리몬은 그들의 사도가 되는 거고.”

부키가 수긍했다.

“ 노타모레, 우린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한 거야. 우리가 뿌린 페르푸메는 정체가 다른 향으로 변했어. 그걸 몰랐어. 아 바보, 바보.”

노타모레가 유선 무늬 눈에 ‘괜찮아’를 띄우고 부키를 위로했다.

“ 우린 그동안 잘 지켜왔어. 그리고 부키, 한탄만 하지 말고 우리부터 우리 안에 거짓을 밝혀내야 해. 페르푸메도 더 소중하게 가꾸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그거라고. 난 위대한 기억의 나무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나 네마조네스는 그렇게 자책을 하는 부키와 노타모레와는 다른 생각을 했다.

‘ 흥, 한가들 하시군. 나는 죽을 맛인데... 이들은 내 불행을 고소해하는 건 아닐까?’

이제 보니 요정들은 서로 입장이 달랐다. 유모리몬이 등장하고 요정 사이에 생긴 갈등의 시작은 원래 네마조네스 안에서 생긴 내분에서다. 그 내분의 원인은 결국,
‘ 그래, 페르푸메였어. 정화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만 정보를 돌리다 보니 이런 변종 요정이 나온 거야. 아, 바보. 그걸 왜 이제...’

네마조네스는 유모리몬의 독립 선언과 기억 청소론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며 최종 피해자는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기억과 기록이 가득한 사이베르가 되도록 신이 나서 일궈놓은 것이 바로 자신, 네마조네스였다. 기록이 다 나쁜 게 아니다. 세상에는 꼭 기억해야 하는 기록도 있다. 만약 어느 한 부분이라도 파괴되면 그것이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이베르에는 네마조네스가 간과한 치명적 구멍이 있었다. 네마조네스는 모든 기록과 기억이 저장소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견고하게 보일 뿐이었다. 쉽게 지은 것은 빠르게 무너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그래도 네마조네스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 설마 유모리몬이 그걸... 금세는 모르겠지. 더구나 김 박사는 이 괴물들이 80%밖에 완성이 안 된 것이라고 했잖아. 제발’

그러나 그건 오산이고 헛된 희망이었다. 유모리몬은 영리했다. 그들은 이미 오랫동안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남해 그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팀이 준비한 자료는 워낙 방대했다. 불길한 첩보가 또 들어왔다. 유모리몬이 기억을 싫어하고 기록을 저주하는 인간들을 자신들 수하로 만들었는데 그들이 하케르(Hacker)였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눈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밤에만 활동한다고 했다. 원래는 정보를 저장하는 일을 하던 인간들인데 이들이 유모리몬에 깊이 설득당한 것이다. 그들은 능력자였다. 코딩 하나로 자료들을 금세 지울 수 있었다. 그 속도와 위력은 거의 바이러스 같았다. 옛날 지구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처럼. 네마조네스는 전에 노타모레가 한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 내 속도와 편리가 나쁜 마음을 먹은 상대를 만난다면 역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고 했지.’ 네마조네스는 어떻게 해서든 사이베르를 지키고자 했다. 사이베르 밖으로 나간 유모리몬은 호시탐탐 네마조네스의 자리를 노렸고, 혼란과 갈등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네마조네스는 자신의 집이 흔들리고 에너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어디서부터 공격하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확실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유모리몬이 사이베르로 대거 침투해왔다. 기세는 은밀했지만 결과는 무섭게 확실했다. 사이베르에서 지우기는 정말 빠르고 쉬웠다. 네마조네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힘이 쭉 빠져 방전된 배터리처럼 그냥 가라앉았다.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노트의요정, 논객닷컴 

써니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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