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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짜리 아들의 청문회[논객닷컴 청년칼럼공모전 가작]
한성규 | 승인 2018.05.01 06:20
©픽사베이

[논객닷컴=한성규] 4살짜리 아들이 샴푸 병을 가지고 안방에 들어갔다. 못 본척하고 있으니 5분정도가 지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그머니 나왔다. 샴푸 병을 내려놓더니 다른 장난을 치고 있었다. 가득 차 있던 샴푸 병을 보니 반쯤 비어있었다.

“안방에 들어가서 뭐했니?” 살짝 떠봤다.
“아무것도 안했어.” 아들이 대답했다.

아들을 앉혀놓고 물어보았다. “샴푸 병을 들고 안방에 들어가서 뭐했는지 말해봐라.”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아들이 언성을 높인다. 뭔가 찔리는 게지.

반이나 비어있는 샴푸 병을 보여주면서 아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이 샴푸 병에 들어있던 샴푸는 어디로 갔지?”
“몰라.” 아들은 이제 도망가려고 한다.

샴푸 병에 샴푸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을 같이 확인한 후에 지금은 반쯤 비워져 있다는 사실 또한 같이 확인했다. 다음에 아들이 샴푸 병을 들고 안방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후에 샴푸 병을 들고 안방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기억이 안나.” 아들은 이제 기억이 안 난다는 변명을 들고 나온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청문회에서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까지 붙고 법집행을 몇 십 년씩이나 한 어른들도 이런 논리를 들고 나왔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계속 다그치는 나에게 아들은 계속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이제 아들의 손에 반쯤 비워진 샴푸 병을 들게 한 채로 같이 안방 곳곳을 살폈다.

“여기에 쏟았니? 여기니?” 이제 방안 곳곳을 뒤지면서 조사를 진행했다.

“몰라. 몰라. 기억이 안 난다니까.” 이제 아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린다. 네 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제 몇 십 년 째 앓고 있는 지병 얘기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실수를 하는 것은 괜찮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아빠도 실수를 한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네가 샴푸를 어딘가에 쏟아버린 것 때문이 아니란다.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네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순간적인 충동으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절대로 실수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가르쳐 주고 싶은 건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다” 라는 내 신념을 말해 주었다.

아이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침대 밑을 가리킨다. 침대 밑에는 샴푸 자국이 흥건해 있었다.

나는 아들과 같이 바닥에 뿌려진 샴푸를 손으로 문질러 닦으면서 말해주었다. “아빠는 지금 네가 보여준 용기 때문에 굉장히 행복하다. 너도 인간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른다. 그때 오늘의 교훈을 다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지만 초보 아빠가 한 말 치고는 대단히 멋진 말이었다.

최순실 청문회가 끝나고 힘 꽤나 있던 어른들이 우루루 교도소에 들어갔다. 4살배기 애만도 못한 어른들이 차례차례 나와서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 이명박 게이트로 도대체 몇 명이 감옥에 갈지 모른다. 이 사람들이 또 어떤 변명을 할지 기대된다.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도 용기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인간은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똑같은 짓거리를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제 개과천선한 네 살짜리 내 아들한테 훈계라도 받아야 나쁜 짓을 고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유혹 앞에 버티지 못해서, 때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는 다시는 그런 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청문회의 심판대, 5천만의 국민이 보는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국가의 어른들을 기대해본다. 

한성규  katana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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