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유모리몬이 극성을 떨수록 새하얀 도화지처럼 진실만 남고 모든 게 평등해질 줄 알았던 세상은 반대로 오만해지고 편협해졌다. 사람들은 이젠 판단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신기술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그것은 노타모레와 부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페르푸메의 에너지도 최고로 약해졌던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그 무렵부터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자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나무들이 고사했다. 노타모레와 부키가 애타게 기다리는 신목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7백년이 된 신목의 딸의 한숨소리만이 대지의 나무뿌리들을 통해 전해져 들려오는 것 같았다.

노타모레와 부키는 문득 문지가 궁금해졌다. 요정들의 기억에 문지는 단단히 새겨졌진 이름이었다.

“문지는 어떨까? 문지에게도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닐까?”
“그래 가보자. 문지라도 위로해주자.”

요정들은 문지가 사는 아파트의 창가로 날아갔다. 문지가 만약 책을 읽거나 노트를 하고 있다면 문지에게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픽사베이

문지는 마침 책상에서 일기를 적고 있었다. 문지는 더 성숙해보였다. 인간의 시간은 요정들보다 훨씬 빠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타모레가 일기로 빨리듯 들어갔다. 부키는 문지가 읽다만 책 <파묻힌 거인>으로 들어갔다.

‘파묻힌 거인? 그럼 문지는 지금 문제를 알고 있고 기억이 인간의 고통을 불러온다고 본다는 건가?’

노타모레가 보기에 일기를 적고 있는 문지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우울해 보였다. 일기는 숲 동화책과 연필,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었다. 아마도 아이에게 주려고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문지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들어 창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이 쓰고 있던 일기를 뚫어지게 보았다. 과연 거기에 펜과 노트를 든 요정이 그림자처럼 비춰 보였다. 요정은 인간에게 모습을 나타내면 안 되는 불문율이 있지만 지금 노타모레로서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문지는 아주 오래전에 잠깐 그 요정을 본적이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문지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느티나무 아래서 노트를 쓰고 있었다. 이파리가 떨어져 노트에 앉았을 때 뭔가 보였었다. 펜과 노트를 든 무엇. 착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요정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응? 나무의 요정? 맞지, 너 그때 그 요정.”
문지는 노타모레를 나무의 요정이라고 알았다. 이파리가 떨어질 때 보였으니까. 노타모레가 부드러운 미소를 문지에게 보냈다. 그러나 문지 표정은 밝지 않았다.

‘문지는 역시 이 변화를 알고 있나보구나....’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 맞지? 그래서 나에게 나타난 거지? 응, 말해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문지가 잠시 노트를 덮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그래, 나한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 우디가 나한테 하는 얘기인 거야.’

문지는 노트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인 것만 같았다.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노트의요정, 오피니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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