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공중파 TV 뉴스에서 남북 정상이 은밀하게 나눈 도보다리 대화를 입술 움직임만 보고 추론한 내용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그 재현기술도 신기하고 과거 같으면 일급보안 대상이었을 텐데 그것이 공중파에 그대로 방송되는 것도 신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주로 미국, 트럼프, 비핵화 등으로 재현되어 나왔는데 그것이 모두가 듣고 싶은 제일현안인 것은 당연하더라도 그 내용 중에 ‘딱 하나’가 대화 첫 부분에 나왔으면 금상첨화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 산책 후 단둘이 앉아 30여분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홍익인간의 기원

그 딱 하나는 민족이 공유하는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결되고 소통되는데 기원만큼 유효한 테마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인류가 공유하는 기원의 이야기를 곧잘 활용한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가 사비로 설립한 민간 우주개발업체 이름은 ‘블루 오리진’이다. 선행 프로젝트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나 버진 갤럭틱 프로젝트보다 (푸른)기원으로 간다는 의미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블루 오리진은 2015년 5월에 자체 개발한 우주 여객선 뉴 셰퍼드(New Shepherd) 시험 발사에 성공하였고 2018년엔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주여행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셰퍼드는 2차 대전 때 유명해진 독일의 대표적인 군견 이름이며 동시에 미국 최초로 탄도비행에 성공한 우주 비행가이기도 하다. 이들을 보면 제프 베조스의 이름 전략들이 뭔가 특별하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현재 아마존은 가정용 로봇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프로젝트명이 ‘베스타(Vesta)’이다. 기아차 봉고, 베스타(Besta)하고 착각하지 말기를. Vesta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Hestia)에 해당되며 가정과 불을 수호하는 여신이다.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욱의 아들 궁선, 우리 신화의 조왕신이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베스타는 로봇 + 가정을 수호한다는 의미까지 자연스럽게 더해진다.

다시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로 돌아가자. 30분 그 자리가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딱 하나 먼저 나왔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고 내가 말한 것은 민족의 기원 이야기였다. 비핵화, 경협 등 현실적인 문제에 묻혀 깜박 잊기 십상인 우리의 기원 말이다. 북방의 패자였던 고구려도 있고 언어, 아리랑, 한글도 우리의 기원이다. 하나 된 한국을 원한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홍익인간이란 우리의 기원을 끌고 왔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면 왜 통일해야 하느냐고 묻는 10-20대층과 한국의 기원을 잘 모르는 외신에게 왜 둘이 판문점에서 만나야하는지 더 필연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상상력과 기억력을 다루는 뇌는 같은 부위

요즘 우리는 기원보다는 창의, 상상력을 더 중시한다. 취직하고 승진하려면 후자가 더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SF나 게임에 빠지는 것도 묵인하고 과학, 예술을 배우라고 독촉한다. 그러나 이건 앞뒤가 바뀌었다.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1976년생 데미스 하사비스는 영국의 인공지능 연구자이고 컴퓨터 게임 설계자면서 구글에 인수된 딥 마인드의 창업자이다. 그는 뇌에서 상상력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동시에 기억력을 다루는 부위라는 발견을 했다. 이는 그해 뇌 분야의 10대 발견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우리는 기억력과 상상력은 각각 과거, 미래를 향한 뇌 활동이라고 보아왔고 그래서 미래 파워인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봤는데 정작 둘은 같은 곳에서 행해지는 지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에서 기원의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이 상상력도 뛰어날 것이니 먼저 기원 공부를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상상력이 뛰어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의 아버지>, <신>, <제3인류> 등을 보면 기원에 대한 이야기, 기원에 대한 탐사가 많다. 산업혁명의 발상지면서 동시에 스토리 강국인 영국이 내놓은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그리고 2018년에 시즌11이 방영될 예정인 BBC 드라마 ‘닥터후’ 등은 우리의 상상력을 꽤 자극하는데 그 콘텐츠들은 지구 구원이라는 오랜 테마로 과거시대의 신, 괴물, 요정 이야기가 변형 재현된 것들이다. <스타워즈>도 마찬가지. 그들은 이야기의 기원, 기원의 이야기를 잃지 않는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빠른 추격이나 스타트업 숫자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기원 스토리 때문이다. 방대하고 기묘한 창조신화와 설화, 수많은 제자백가 이야기와 전설적인 시인, 미녀, 영웅, 지명 이야기 그리고 도사와 무술, 고사성어가 넘쳐난다. 일본은 그 중의 일부를 따다가 드래곤볼, 포켓몬스터 등으로 히트를 쳤다. 중국은 아직 그들의 자산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조폭영화나 막장, 멜로드라마가 판치는 중에도 드라마 ‘구미호’, ‘별에서 온 그대’, ‘도깨비’가 반갑고 ‘신과 함께’ 등이 반갑다. 최근에 1400만 명 이상이 본 ‘신과 함께-죄와 벌’의 테마는 제주도 신화인 미여지뱅듸(앞이 탁 트인 황량한 벌판. 죽어서 저승으로 가기 직전의 황량한 땅)를 소재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콘텐츠는 이야기 한류를 위해서도 참으로 바람직하다.

다음 방북 때 첫 이야기는 우리의 기원 이야기

지금 오피니언타임스에는 ‘노트의 요정’이 연재중이다. 노트와 책을 지키는 요정들의 기원과 투쟁에 관한 단편 판타지이다. 세계수와 미미르의 샘 같은 북유럽 신화에서 시작해 마지막은 모바일과 온라인에 의해 지워지는 기억, 상상력에 대한 현실적 우려를 담았다. 대안으로 손 노트를 제안하고 있다. 작다고 보지 말자. 언젠가 돌아서서 보면 지금의 손 노트는 우리 각자가 키워온 생각의 기원이 되니까. 민족으로 보면 그 노트가 역사다. 역사는 기억 동질성을 강화한다. 그래서 다음 방북 회담에서는 남과 북의 동질성을 이루는 우리의 기원 이야기가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래본다.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7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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