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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포비아_한국의 고립불안과 명절[논객닷컴 청년칼럼공모전 가작]
허승화 | 승인 2018.05.03 11:18

[논객닷컴=허승화] 우리 나라는 고립불안(다른 이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불안의 형태) 지수가 높다. 남들 다 하면 해야 한다. 유행이 잘 돌고 잘 사라진다. 몰개성과 무신념이야 말로 현대 한국의 종교다. 때와 장소와 주변 사람들에 맞춰 유연하게 스스로를 잘 바꾸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SNS 친구가 몇 명인지, 얼마나 발이 넓은지는 한 개인에 대한 큰 칭찬거리다. 대상에 따라 보호색을 바꿀 줄 아는 현대적 인간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때에 따라 자기 몸 색깔을 바꾸려면 개인은 우선 개성을 없애야 한다.

평범함을 최고로 치는 특이한 세계에서 특이함은 욕 먹을 거리가 된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한 다리를 절고 있는 우리들 ‘레임덕’(원래는 정치용어이나, 여기서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특이점을 지닌 모든 개인을 총칭한다)은 환영 받을 수 없다. 그 중 연애는 남들 다 해서 해야만 하는 필수과목 중 하나다. 마치 군 미필자처럼, 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자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 연애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연애를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 받고 ‘안’한다는 그의 말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고 말한다. 어디 문제 있는것 아니냐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주제는 결혼으로 옮아간다. 그 나이 먹고도 결혼을 하지 못했냐며 이상하게 취급하거나 결.못 남녀의 성적 취향, 성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오지랖 발언들을 하기 시작한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우리의 실 생활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결혼 못하는 남자 여자들은 다자 앞에서 죄인이 되고 만다. 다만 그 연령이 조금 더 상향 조정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고립불안적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레임덕들이 특히 꺼리는 시기가 있다. 바로 ‘명절’이다.

©픽사베이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명절 공포증을 지닌 환자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미혼 젊은이들은 명절을 두려워 한다. 물론 젊은이라면 결혼을 했더라도 두려움의 이유가 달라질 뿐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많은 욕망들이 스쳐 가는 교차로 같은 시공간이다. 평소에는 교류도 없던 이들과 갑작스레 만나 서로 압력을 주고 받는 분위기를 견디는 건 정말 어렵다. 이제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닌 이 나라 에서 평소엔 거의 볼 일이 없는 친척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할 말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경전을 벌인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욕심과 희망을, 친척들은 과시욕구를, 자식들은 불만을 표시하는 창구로 명절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각기 다른 욕망과 욕구를 지닌 이들이 한 데 뒤섞여 있으므로 상황은 어지럽게 흘러간다.

명절을 맞이한 미혼 남녀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는 단연 취업(직업)과 봉급에 대한 질문이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또 하나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참견에 가까운) 질문이 있을 것이다. 두 관문을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명절이라는 의례를 잘 통과했다고 할 수 없다.

번듯한 곳, 최소한 남들 이목에 맞춰 부끄럽지 않은 곳에 취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때론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재단하는 것은 가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 르는 크나큰 실수 중 하나다. 자신의 조카가 어떤 전공을 갖고 있는지를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명절이 되면 취업을 했는지 물어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리의 발현인가? 괴로운 젊은이는 매번 자신의 부모에게 괴로 움을 호소했겠지만 그 호소는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명절 맞이 음주가무보다 하찮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명절을 맞은 참견쟁이들은 듣는 이의 사정은 모른 척한다. 역지사지의 사유를 한 번도 해보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 폭탄을 던지면서 가뜩이나 괴로운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든다. 이들이 이런 이해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배경에는 세대 간 간극이 한 몫을 차지한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아파트, 빌라 등으로 생활 환경이 변화하고 핵가족화 된 이후, 급격히 이뤄낸 발전은 많은 병폐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세대 간의 심각한 간극이다. 한국 전쟁 이후 우리 사회는 약 5-10년을 주기로 하여 정치 성향, 언어 생활, 생활 반경, 문화 등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화했다. 그래서 아직 이 사회에서 세대론은 유효하다.

허승화  tmdghk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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