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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용들의 비상[이수진의 소중한사람]
이수진 | 승인 2018.05.08 10:19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이상은 힘든 거죠? 샘.”
어느 봄날, 이제 막 고 3으로 진급하는 학생이 말했다.
“그래, 그 이상은 아무래도 힘들지. 그렇다고 정시로만 해보자니 문이 너무 좁다.”

그의 과외선생인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질문에 묻고 답하는 우리는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고 안타까운,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눈빛. 눈동자를 가득채운 ‘때 이른 좌절’의 먹구름이 때로는 패배감으로 뚝뚝 방울이 되어 떨어지곤 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그리고 2학년 1학기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었다. 어찌어찌 정신을 차려보니 2학년 2학기가 시작됐고, 다행히 그때쯤 그에게도 꿈이 생겼다. 그러나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보니 이미 정해져 있는 교과 성적이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서 3학년 1학기 성적을 1등급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전 학년 교과 성적 평균은 그가 원하는 기대치까지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서울 중구의 한 입시학원에서 학생이 쪽잠을 자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말 할 것이다. 그럼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를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옳은 말이다. 정시로 갈 수도 있겠지. 다만 모집인원이 매우 심각하게 적어서 말이지. 현재 대부분 대학들의 정시인원 선발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2022학년 대입제도 개편안을 두고 최근 교육계에서 난리가 났다. 정시확대를 찬성하는 입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번복에 번복을 거듭하던 교육부는 이 개편안을 국가교육회의에 맡겨버렸으니 혼란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립양상으로 번져 진학 관련 교사모임인 진진협, 입학사정관들의 모임인 사정관협의회 등 23개 교육단체가 정시확대 반대 기자회견을 열자, 곧바로 정시확대를 찬성하는 쪽에서도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입시에서 수능을 자격고사처럼만 대우하자는 의견과 수능만으로 대학을 가야한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대입제도 개편 논란의 불똥은 성인 영어강사이자, 입시 과외수업으로 사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나에게까지 튀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사람들이 종종 생겨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학생과 그의 ‘때 이른 좌절’을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이 성실하면 좋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행평가도 꼬박꼬박 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중간·기말고사도 잘 보면서... 그런데 그렇게 성실할 수도 있겠지만, 사춘기를 막 벗어난 어린 마음이 솔솔 바람이었다가도 때로는 돌풍이 되고, 거의 대부분은 ‘몰라요’라는 말을 애용하는,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열 일곱, 열 여덟, 열 아홉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가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잠깐 방황의 시기가 찾아와도, 외적인 폭풍이 찾아와도, 그 실수는 그의 삶에 끝까지 영향을 주고 만다. 덕분에 아이들은 체념이라는 것을 먼저 배우는 애어른들이 되어간다. 성숙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초연한 포기를 먼저 배운다. 많은 아이들이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

‘이제부터 해봐야 뭘 하겠어.’

또한 깜깜이 학종, 면접. 그 무엇 하나 어떻게 점수가 차별화되는지 투명한 것이 없다. 왜 떨어졌는지 명백한 이유조차 알 수 없다. 그러니 나 같은 과외선생을 찾아온다. 학부모들, 심지어 학생들조차 입시정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 입시분석을 하는 이들의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다. 수행평가, 중간, 기말평가, 원서를 쓰기까지 사적인 힘을 더 많이 빌려 준비하는 이들이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과연 정상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고 역전이 가능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투명하게 수능점수 하나를 가지고 줄을 세워주길 바란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학년 때 바람개비처럼 방황했더라도, 나머지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막판 역전승의 신화를 쓰는 학생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좌절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그 희망을 3년 내내 가지고 살아가주길. 집안 사정이 어려워도 ‘노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많은 용들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을 해본다. 성취욕구가 높은 우리의 특성상, 심한 경쟁에 상처받는 아이들의 안정을 그들의 성적보다 최우선 할 수 있는, 지금 날아오르지 못해도 우회해 갈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대안들이 더 늘어나길 바라본다. 다시 한 번 어린 용들의 눈부시게 빛나는 그 비상을 꿈꿔보는 것이다. [논객닷컴=이수진]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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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4th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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