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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요정15_성식의 노트[‘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써니 | 승인 2018.05.08 10:44
©픽사베이

표지에 거대한 나무가 뿌리에 별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노트는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성식이 보낸 것이다. 문지는 한참동안 노트를 매만지다가 말없이 우디에게 건넸다. 우디는 흐린 눈을 비비더니 노트를 받아 표지를 넘겼다. 한 장, 두 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늦어졌다. 눈을 또 비볐다. 노타모레가 노트에 페르푸메를 짙게 뿌렸던 것일까. 우디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우디는 문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엄마, 이상해. 내가 어젯밤 꾼 꿈에 나온 나무가 바로 이 나무 같아. 근데 여기 내 이야기가 있어. 아빠는 그 나무하고 내 이야기를 했다는 거야.”

문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래? 희한한 일이다, 아빠는 너를 잊은 것 같았는데. 그치?”

우디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아빠와 엄마가 처음 만났던 때도 있어. 노트의 요정을 만난 것 같았대.”

문지가 물기 젖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빠는 한 번도 그런 말 안 했는데...”

우디는 계속 중얼거렸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섬에서 하늘로 뻗은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보았고, 그 나무가 아빠한테 해준 이야기도 있어. 근데 나무는 아빠한테 내 이야기를 한 거였대. 그럼 아빠는 나무하고 또 내 이야기를 한 거네.”

“그게 기억이지. 우리를 가족으로 이어주는…”

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우디의 몸이 문지에게는 점점 신성한 나무처럼 보였다.

“아빠는 연락도 잘 안하고... 그래서 난 아빠가 우리를 잊었다고 생각했어. 기억은 아픈거고 그래서 나쁜 거고... 그래서 나도 아빠를 잊으려고 했는데. 근데 아빠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어.”

문지는 우디를 가볍게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근데 나 사실 요즘 저녁만 되면 머리가 멍해져. 눈도 좀 그래.”

문지 눈에 아주 오래간만에 미미르의 샘이 깃들었다. 문지는 가만히 미미르 눈으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좋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나무의 요정이 늘 우리 곁에 있어. 곧 기억하는 마법을 가져다 줄 거야.”

문지와 우디는 아빠의 노트, 그리고 아빠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우디의 눈은 순결한 아이의 호기심 눈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얼마 후 방으로 들어가는 우디의 손에는 아빠의 노트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다른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들은 나무, 샘, 추억과 사랑 이야기들을 나눴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변화가 이제부터 채워 넣어야 할 기억과 이야기들이 많은 어린 자식들 세대에서 먼저 시작되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랬다. 기억할 것이 적어 델레테에 완전히 세뇌당하지 못한 우디의 또래가 먼저 가족 메모리의 기원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 했고 그리고는 사이베르에서 기억을 찾고 그 다음엔 책과 노트에서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기억을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 부모들은 델레테의 뜻조차 잊었던 것 같다. 사실 그들은 잊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기억이라는 말을 듣자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 얘, 그게 뭐지?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할 게 없어. 그건 슬프고 위험한 거야. 그래서 더 이상 기억하지 말자고 했던 사실만 기억나는 걸.”

그들에게 과거는 대체로 오염된 것이고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기억을 지우면 순백의 백지 상태가 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누구도 그 누구를 예외적인 상태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점점 기억과 기록을 지워갔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억과 기록 때문에 허무하게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렸다.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노트의요정, 논객닷컴 

써니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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