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주말 텃밭에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모종내기를 앞두고 밭을 만들어 놔야 하는데 빗줄기가 잠잠해질 기미를 안보입니다.

지인부부가 “이번 주말엔 꼭 나머지 밭도 만져놔야 한다”며 텃밭행차를 예고한 터라 비가 그치기만 기다려봅니다. 일전에 심은 감자씨 싹이 제대로 올라오질 않아 비가 꼭 와야 하지만, 우선은 고구마 밭부터 만들어놔야 해 “비가 오더라도 오늘 오지 말고 내일부터 와라!” 간사한 마음(?)으로 빌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텃밭농군의 사정을 생각해줄 리 없죠. 볕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했지만, 비는 그칠 조짐을 안보이더군요. 그렇다고 조막만한 텃밭 일에 우비와 장화까지 동원하기가 뭐해 마음 비우기로 했습니다.

동이: “여보~ 비가 와서 오늘 밭일하기가 어렵겠는 걸...경희아빠 온다고 했는데 어쩌나?”

동이네: “우산 쓰고 일들하면 되지... 오늘 안하면 다음주나 돼야 할텐데...”

동이: “농촌에서도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했소... 비 맞으면서 뭔 일을 하오?”

동이네: “공치는 날?”

동이: “아무 것도 안하는 날을 공치는 날이라고 했지~ 일 같은 거 안하고 그냥 노는 거요~ 노는 거~~~ 비 쫄쫄맞고 일해봐야 능률 안 오르고 빨래감 쌓이고, 감기 걸리기 십상이니 그냥 쉬라는 거였소... 조상님들 말씀 틀린 게 하나도 없지~암~~”

동이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한다구?”

동이: “뭐 바깥 일을 안했을 뿐이지 집안에서야 했지...”

동이네: “뭘 했는데?”

동이: “??? 하긴 했지...이런 거 저런 거 여러가지...빈대떡 부쳐서 막걸리 한잔 하기도 하고...”

동이네: “~~~?”

동이: “이런 날엔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이 제격인데...”

‘지금 부침개 부쳐먹자는 얘기냐?’는 눈빛입니다. 대충 눙치며 멍때리고 있는데, 때 맞춰 지인부부가 도착합니다.

“비가 와서 밭 만들기 글렀어요~ 막걸리 있으니 부침개나 부쳐 먹읍시다!”

비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경희아빠 바로 의기투합합니다. 텃밭 한쪽에 부추와 달래가 올라왔고 참취와 당귀도 연록색 이파리를 달고 있어 부리나케 우산 쓰고 캐왔습니다. 마침 지인 부부도 교외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두릅을 챙겨왔습니다. 쿵짝이 맞습니다. 이 만하면 훌륭한 부침개 거리죠.

부침개 재료들. 달래, 부추, 취, 당귀와 두릅 ©동이

예부터 봄 꽃피는 계절엔 화전이라해서 밀가루 반죽에 꽃잎을 놓아 밀전병을 부쳐먹곤 했습니다.

뿌리째 캔 달래는 향이 제법 코끝을 찌릅니다. 부추도 이제 막 잎이 돋아나 파릇파릇하고... 다듬는 일이 번거롭긴 했지만 일을 벌려놨으니 남정네들이 책임졌습니다. 아예 직접 부쳐먹을까 하다가 그 마저 해버리면 ‘쪼잔하게’ 보일 것같아 안사람들 몫으로 넘기고...

농막 바깥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유붕이 자원방래라~’ 달래파전에 막걸리 한잔 기울였습니다. 봄 기운이 몸속으로 빨려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동이

“여보~ 내가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처럼 거섭이 많이 들어가는 파전을 부칠 때는 찹쌀을 넣지 않는 게 좋아요~ 밀가루만 갖고 묽게 개서 살짝 입혀서 부쳐야 제 맛이 나지...”

‘한 요리’하는 경희아빠가 안사람에게 파전 레시피를 '강의'합니다.

“그럼 다음부터는 직접 부처 드세요~~오~”

레시피가 뭐 문제겠습니까?  맛있게 먹으면 그 이상의 레시피가 없죠. 막걸리 한잔에 달래파전 한 젓가락이 텃밭농사보다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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