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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람[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신명관 | 승인 2018.05.09 09:20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줘.”
“왜 해주는거야?”
"해달라매?“
“아니…….”
“싫으면 말고.”
“아냐…….”

별다른 이유 없이 날 미워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것도 아니고, 부탁한 것들을 내친 적도 없으며, 크게 나무랄만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도 그럴 때가 있다. 그 와중에 그들이 급해서 내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면 나는 또 잘 들어준다. 그럼 나를 더 미워할 거란 사실을 알고서도 해준다. 당신은 아마 스스로가 이기적이고 성격 더럽다는 걸 반증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앞으로 나를 더 퉁명스럽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게 아니니까.

천 년 전의 책이지만 탈무드는 상대방을 미워하는 방법에 대해 잘 설명해놓았다. 호의를 베풀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이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은혜갚음’이고, 호의를 베풀지 않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버리면 ‘미워함’이다. 괘씸한 사람에게 되려 잘해준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미워하고 싶을 때 이만큼 효과적인 게 없긴 하다. 당황스러움, 난처함, 미안함의 삼종세트가 상대방에게 가니까. 차라리 내가 ‘싫어. 너도 내가 힘들 때 도와주지 않았잖아’라고 대답한다면 인과응보라고 생각할 텐데, 이건 등가교환을 역행하는 짓이라 혼란스럽다. 왜,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도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장발장이 자신을 살려주자 자살을 택하지 않은가. (자베르는 그래서 장발장에게 “대체 어떻게 된 악마놈인가”라고 한다.)

©픽사베이

다만 탈무드는 두 가지 말하는 것을 깜빡했는데, 첫째는 그 와중에 상대방을 미워하기 위해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 중에서 진심으로 상대방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단 사실이다. 호구랑은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내 퍼주는 성격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잘 파악할뿐더러, 나 또한 사람인지라 진심으로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욕과 함께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길 바라니까. 다만 나를 미워하던 상대방이 내게 무언가 부탁을 할 때면 드는 생각들이 있을 뿐이다.

평소엔 내게 부탁은커녕 일말의 빚조차 지기 싫어하는 사람인데 무슨 일일까. 이 사람은 내게 부탁하기까지 얼마나 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내가 필요했으면 이런 부탁을 내 앞에서 꺼낸 걸까. 보증 서달라는 것만 아니면 나름대로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하는 부탁을 내가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받는다. 설마 장발장이 자베르를 자살시키려고 용서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덕분에 나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의를 받은 상대방이 여전히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단 사실이 탈무드가 말하지 않은 두 번째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밉고 싫은 짓은 계속될 것이다. 내게 괜히 상처내고 싶은 이유가 정말로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닌 한 말이다. 너무 무기력하고 피곤한 날이 연속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내게 짜증을 내놓는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저 내가 너무 편해지는 것만 같아서 내게 심한 소리를 했다가 나중에 멋쩍어 하는 이들에게도. 배가 고파서, 과제가 많아서, 안 좋은 일들만 연속으로 터져서, 우울해서. 괜히 나의 어떤 모습들에게 트집을 잡고 신경질을 내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하길 바란다. 날 보고 진심으로 ‘싫다’고 하지 않는 한, 그러한 모습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신호로 판단할 테니까. 나 또한 언젠가 당신에게 그럴지도 모르니까. 대신에 나는 당신들을 조금은 부끄럽게 만들 것이다. 이게 내가 당신들을 미워하는 방식이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내가 중간에 죽어버리면 ‘그랬던 관계’라는 과거형으로 쭉 남아있을지 몰라도, 당신과 내가 서로 공존하는 한 관계는 변할 것이고 갈등은 불가피하다. 언젠가는 내가 당신을 미워할 날도, 당신을 경멸할 날도 올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은 당신 덕분에 윤동주의 자화상마냥 나를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역시 해피엔딩을 꿈꾼다. 그 모든 관계의 변화가 당신과 나의 모든 성장이라 생각하고 싶어서. 태생적 멍청이라 큰일이다. [논객닷컴=신명관]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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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관  silb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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