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장례식에 가는 나이

서른이 되는 동안, 몇 번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다녀왔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계산해보니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다녀온 횟수가 더 많았다. 결혼식의 기억보다, 장례식의 기억이 더 선명했다. 문득, 쓸쓸한 길을 걸어온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은 결혼식보다 훨씬 번거롭고 조심스럽고 마음의 피로도가 높은 곳이었다. 성인이 된 후, 처음 혼자 장례식장에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땐 급하게 장례식 예절을 찾아봤다. 결혼식 예절 정도야 뭐 실수 좀 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장례식은 실수가 곧 무례함이 되는 곳이니까. 장례식장의 수육이나 육개장 맛은 늘 어딘가 비릿했다. 실제로 맛이 비렸다는 뜻이 아니라, 뭔가 ‘생의 비릿함’ 같은 것이 자꾸 목구멍에서 울컥했다. 그렇게 장례식장을 빠져 나오면 발뒤꿈치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씁쓸함이 며칠을 갔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장례식 외에도 동갑내기 친구, 사촌 형 정도 되는 나이대의 장례식에도 가본 적이 있다. 특히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뜬 자식의 장례식장은 견디기 힘들 만큼 슬픔이 휘몰아쳤다. 부모가 울부짖는 울음에, 빈소에 차려진 촛불들이 헐떡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제 겨우 서른에, 겨우 몇 번의 장례식 기억이 이런 탓에 앞으로 더 많이 가야할 장례식들이 결코 익숙해질 것만 같진 않다. 애초에 남의 죽음과 슬픔 앞에서 태연해지는 일이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픽사베이

성인의 장례식

몇 달 전, 가장 친한 대학 동기 J의 조부상이 있어 영락공원으로 조문을 간 적이 있다. 일이 있어서 같은 대학 동기인 여자 친구와 낮에 조문을 갔는데, J의 가족 친지 분들이 많이 계셔서 조문객은 우리뿐이었는데도 빈소가 북적였다. J는 그리 슬프지 않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인을 보내드리는 일련의 과정을 해내고, 조문하는 우리를 소개했다. 분향, 재배, 조문의 통상적인 과정을 마치고 J와 우리는 위층 식당으로 가서 간단히 음료수를 마셨다. 우릴 생각해서인지 끝까지 담담한 모습이, 나와는 다른 ‘어떤 어른’의 모습 같았다. 어쩌면 성인이 되어 고인의 가족으로서 장례식 절차를 밟는 것도 사람이 성숙해지기 위한 통과 의례 중 하나인 걸까. 당사자보다 더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J가 말했다.

“야, 내가 장례식을 겪어보니까, 장례식이라는 게 죽은 사람 위로하고 잘 보내드리는 것도 있지만, 산 사람 살자고 하는 일 같더라고. 사실 슬픔이나 후회 같은 감정들이 지금 당장 느껴지는 것보다 후폭풍이 더 무서운 법이잖아. 장례식 덕분에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서, 3일장이면 3일 내내 그 후폭풍들을 겪으면서 슬픔이나 후회를 다 털고 가는 거지. 산 사람들은 살아야 되니까.”

장례식, 고인을 보내드리고 기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어쩌면 산 자를 위한 의식. J도 장례식 내내 할아버지에 대한 슬픔이나 후회, 그리움 같은 감정의 후폭풍을 삭이고 감내했던 거겠지.

이별이 예정된 삶

꼭 누가 죽는 일이 아니더라도, 멀어지고 잊히는 이별은 우리 삶의 기본 옵션이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기본 옵션으로 딸려왔으니까. 꼭 장례식이 아니더라도, 이별 후에 후폭풍을 견디는 나름의 의식을 치르는 것도 보통의 기본 옵션일 것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오히려 후련해하기도 하고, 어느 새벽엔 술에 취해 “자니..?” 같은 메시지를 던져보는, 그런 지루하고 일관적인 래퍼토리가. 조금 덜 주책스럽고, 덜 후회스러운 방법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의 후폭풍을 겪는다.

J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이란 결국 마지막 이별의 후폭풍을 떠넘기며 떠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이 끝난 뒤의 일은 산 자들이 알 수 없으니 고인이 저승에서 얼마나 괴로움을 겪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승에서는 고인이 이승에서 살았던 후폭풍을 산 자들이 떠맡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후폭풍 속에서 울고 위로하면서, 금세 잊지는 말자고 다짐이라도 하는 걸까. 내가 잊고 지내던, 떠나버린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뒤늦은 후폭풍이 나를 조금은 사람답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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