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한국 사회는 일하는 사람들을 근로자라 부른다. 법적으로도 5월 1일의 정식 명칭은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이다. 노동관련법 또한 ‘근로기준법’이 공식 이름이다. 근로자를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노동자라고 불렀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진상 손님 앞에서도 되도록 밝게 웃고, 몸이 안 좋아도 살아있다면 출근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근로자(勤勞者)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걸 내포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노동과 근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 국어 교과서라 불리는 ‘국민소학독본(1895)’을 참고하면 노동은 ‘육체적 생산 활동’, 근로는 ‘나라의 부강’과 ‘부지런함’을 뜻한다. 현재는 혼용되어 사용되지만 의미 차이가 있던 단어들이다. 물론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삶의 목표이자 시민의 미덕이었던 시대에는 근로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근로자의 날은 본래 노동자의 날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근로자의 날로 변경되었다. 이처럼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문제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땅콩회항으로 알려진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승무원은 매뉴얼에 따라 견과류 간식을 조현아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조현아는 간식을 봉지째 주었다며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 꿇린 채 폭력 및 폭언을 행사했다. 사무장이 승객 응대 매뉴얼을 보여주며 문제가 없음을 안내했으나 소용없었다. 조현아는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권력관계를 부당하게 행사하며 근로자의 인격마저 사용자의 것인냥 행세했다.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근로자들이 받는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사무장은 일반 승무원으로 발령받아 사실상 좌천됐다.

한국의 갑질은 고유명사다. 외신에서도 번역하지 않고 ‘gapjil’로 소개할 정도다. 한국의 노동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하거나, 독특한 형태로 발생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최근엔 조현아의 모친 이명희씨가 공사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의 여성은 물건을 발로 차고 사람들에게 삿대질을 하거나 잡아끌고, 도면을 뺏어 바닥에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현장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을 듣는다. 한국사회에서 기업 총수에게 반기를 들었다가는 생계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갑질의 원인은 특정인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 이후 과정은 그 사회가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2013년 뉴질랜드 집권 국민당 애런 길모어는 호텔 바에서 술을 많이 마셔 이미 취한 상태였다. 웨이터는 규정에 따라 술을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길모어는 웨이터에게 “너 내가 누군지 알아?(Do you know who I am?)”라며 술을 더 줄 것을 요구했다. 이 발언은 언론에 공개되어 애런 길모어는 의원직까지 내려놓아야 했다. 한국의 모 국회의원이 아르바이트생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악덕 업주를 구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지만 논란에 그쳤던 것과 대조된다.

개인의 삶에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시대가 변했고 시대에 적합한 언어가 필요하다.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의 날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서도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고, ‘근로의 의무’를 삭제했다. 또한 33조 4항에서 ‘노동조건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되, 그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국가의 성장을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자주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단어 하나에 너무 민감한 반응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어가 가진 힘을 우리만 과소평가하는 것일지 모른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복원할지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다. 당시 남재희 ‘노동부’ 장관은 근로자의 날이 맞다며 노동자의 날로의 복원을 반대했다. 그러자 홍사덕 의원이 ‘근로부 장관’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자신은 노동부 장관이 맞다고 주장했다. 근로자의 날이 맞다면서 노동부 장관이라 주장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가 스스로 ‘그게 그건데 아무거나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근로가 맞다’는 논리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노동력이다. 인격까지 내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가치를 담은 언어가 ‘노동자’이다. 반면 근로자라는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를 가진 사용자 편의 언어이다. 국가가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국가는 가치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꼭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면 사용자라는 단어도 사용자의 성실 의무 수행을 강조하는 단어로 수정해야 한다.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노동문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갑질 근절을 위해 ‘노동’의 복귀를 주장한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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