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좋은 습관’ 캠페인]

그러나 우디의 꿈처럼, 나이테의 질문처럼 세상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기억을 무서워했지만, 자신에 대한 신비스러운 태몽을 꾸고 자신을 품어준 엄마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무동 태워주고 귀를 잡아 서울 구경시켜준 기억도 부정할 수 있을까?

다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페르푸메가 피었다. 지식인들은 ‘좋은 습관’이라는 캠페인 테마로 책 읽기와 노트하기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페르푸메가 더 세졌다. 문지는 기뻤다. 우디가 다시 노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렸다. 눈도 맑아졌다. 드디어 사막의 샘물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문지는 신이 나서 자신의 노트와 남편 그리고 이웃 지인들의 노트와 책을 모아 “노트꽁주가 우리를 부른다”하며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위대한 메모리! 우리의 노트’ 전시회를 열었다.

그 노트에는 나이테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작은 불씨가 되었고 거짓 세상에 소금이 되었나보다. 사람들은 그 소소한 노트에 새삼 감동했다. 이 작은 전시회는 뜻밖에도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갓 결성된 ‘ 좋은 습관을 남기려는 엄마들의 모임’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엄마들의 참여와 응원은 대단했다. 엄마는 자신과 아이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억이 누구보다 많은 계층이기 때문일까. 물론 유모리몬이 뿌리는 델레테 향이 더 강해졌지만 흐름은 이제 바뀌기 시작했다. 가을은 겨울에 지고 겨울은 봄을 이기기 어렵다. 엄마 그리고 아빠들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지만 생명이 다시 피어나려면 잔인한 시간은 견뎌야 했던 시간이었다. 방송도 가세했다. 출연자들은 소소하지만 재밌는 기억을 들고 등장했으며 그런 프로그램들은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픽사베이

변화는 강렬한 운동으로 전개됐다. 유모리몬이 점점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 싸움은 끝났고 세상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청소했다고 자신만만했던 유모리몬으로서는 정말 뜻밖의 일격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나무와 페르푸메의 힘을 간과했던 것일까.

문지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페르푸메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옴을 느꼈다. 그것은 멀리서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페르푸메 메시지였다. 우디는 엄마의 노트와 일기도 읽었다. 성식이 문지에게 보낸 편지도 읽었다. 살짝 부끄러운 것만 빼고.

“와, 엄마는 사막을 동경했던 소녀였구나. 긴 머리에 하얀 피부의 노트꽁주라니. 히히히. 웃긴다. 엄마는 아빠가 엄마한테 어린 왕자였어? 근데 정말 사막의 샘물이 있는 거야? 엄마는 한 번도 사막에 가본 적이 없잖아.”

우디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터졌다. 문지는 오랫동안 무엇이든 메모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엄마는 샘물을 봤어. 요기 내 앞에 요렇게 있잖아. 난 샘물을 찾은 운 좋은 엄마라고. 후후.”

문지는 그러면서 우디가 손에 든 노트에 살고 있는 요정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우디 방에 책이 쌓이고 노트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디는 세상의 훨씬 많은 기억을 알고 싶어 했다. 눈동자도 점점 또래 남자 아이답게 맑아졌다. 우디는 점점 잘 웃었다. 우디는 곧 아빠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노트의 요정 이야기일 것이라고.

문지가 노트를 덮었다. 어느 덧 벌써 점심시간이다. 오랜만에 글을 읽는데 집중하느라 눈이 뻐근했다. 눈을 감자 아직도 우디의 글씨와 나무요정의 잔상이 남아 있다. 우디가 쓴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 속에 선명하다. 다시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폈다. 에필로그를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었다. 

<노트의요정 시리즈 전체보기>  김한, 7321디자인, 황인선, 노트의요정, 오피니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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