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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서은송 | 승인 2018.05.14 10:56
‘고도를 기다리며’ 포스터

[논객닷컴=서은송]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곡작품이기에 여러 번 문장을 곱씹어보고 책이 닳도록 되새김질 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해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또 다시 책을 펼치게 만드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과 무거운 주제를 희극적 장치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느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그루만이 서있는 언덕 밑에서 늙은 두 방랑자(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가 ‘고도(godo)’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단지 그것으로 시작돼 끝이 난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들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다가 지금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디로 온다는 것인지, 왜 기다리는 것인지도 잊었다. 그저 습관처럼 지루한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지독한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욕하고 질문하고, 회상하고, 싸우고, 장난하고, 춤추고, 운동하고. 그렇지만 고도가 오면 이 지루함이 끝난다는 희망 속에 둘은 끓임 없이 말을 이어간다. 그들의 상황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것은 고도가 아니라 그가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갖고 오는 소년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여러 번 이 책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극 속의 인물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언젠간 고도를 보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인물은 희망을 가지지 않은 럭키와 포조일 뿐이다. 럭키와 포조의 두 인물만 봐도 비합리로 휩싸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이 인물들을 통해 퇴폐적이고 역설이 정의가 되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표현한다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여러 번 읽고 곱씹다보니 그들을 통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희망을 기다리는 자가 마주친 것이라고는 지배적, 절망적 같은 인물과 상황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슬픈 연결고리이다.

‘기다림 끝에 무의미한 사회’라. 절망적 세계의 유일한 희망이라곤 고도의 전령인 소년 뿐이라니. 이 절망적인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소년 뿐이라니! 그걸 모르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하염없이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작중 인물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현대어로 ‘웃프다’라는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웃긴데 슬프다. 비애와 웃음이 공존하는 희곡. 결말마저 농담으로 끝나버리니 우리에게 툭하고 짐 한 덩어리 던지고 간 느낌이다.

내게 있어 고도는 재물도, 명예도, 사랑도 아니고 ‘고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나’이다. 어느 사람에게나 고도와 같은 ‘기다림’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갈구하고 기다릴 것이다. 갈구하고 기다려나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난 고도를 기다리고 싶지가 않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디선가 나를 향해 오고 있을 ‘고도’ 당신을 응원하겠다고.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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