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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樂[김봉성의 고도를 기다리며]
김봉성 | 승인 2018.05.15 11:46

[논객닷컴=김봉성] 공(公)교육은 공(空)교육이어서 그 중심에 사(死)교육이 있다. 그래서 사(私)교육이 있다. 사교육으로 먹고 사는 나는 내 이름 뒤에 괄호 하나를 가지고 있다. 괄호 속에 강사, 선생, 스승 중 어떤 말을 넣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수업 들으면 제가 찌그러지는 것 같아요.”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면서 나는 내 학생을 떠올렸다. 학생은 논제를 나처럼 해제하지 못함을 자책하며 자신을 미생물이나 쓰레기로 격하시켰다. 내 답안은 오래된 밥벌이의 당위를 갖춘 것이므로 이제 막 논술을 시작한 학생이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격이 갈급한 학생은 강사인 내 당위가 자신의 당위여야 해서, 늘 당위에 닿지 못한 자신이 오답임을 자처했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니다. 학생의 잘못도 아니다. 체계의 문제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내가 아직도 대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정답인가? 이 질문에 당당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 [스쿨 오브 락]에서 잭은 사기꾼이었다. 교사가 아니면서 교사 행세를 했다. 그러나 정규 교과 과정 대신 락 음악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생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정규 교육의 사기성이 반증되어버렸다. 개선되어야 할 것은 성적이 아니라 자아다. 교실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교장 앞에서 찌그러져 있던 학생들이 락을 하면서 만개했다. 영화에서 잭의 학생이 노래했다. - 우리는 만점을 받죠. 하지만 바보가 된 기분.

스쿨 오브 樂 스틸컷 ©네이버영화

자기 발견

잭은 학생의 개별성을 긍정한다. 물론 자신의 사기를 위해서이고, 영화이니 가능한 것이겠지만 잭의 긍정으로 학생들의 ‘자기 발견’은 주목해볼 만하다. 잭의 등장 이후 학생들은 각자의 특기에 따라 적합한 역할을 맡았고 맞지 않는 부분은 타협을 통해 교정했다. 모두가 제 역할을 수행할 때 밴드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학생들은 자신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왕따는 자신 있게 키보드를 쳤고, 파파보이는 스스로 작곡을 하며 자신을 드러냈고, 뚱뚱해서 소심한 여학생은 노래로 자신감을 찾았고, 규칙에만 성실했던 반장은 능동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락을 하는 동안, 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이 옳았다.

현실의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틀렸다. 현대 사회의 교육은 취업 역군과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나머지 개성의 신장에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학생을 검증하는 것은 숫자다. 학교를 졸업해서도 숫자로 사람이 평가된다. 숫자는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명확하고, 숫자의 증식은 끝이 없고, 우리는 늘 개선되어야 하므로 목표라는 숫자 아래서 우리의 현재는 정답에서 모자란 오답 중일 가능성이 높다.

이상 자아와 현실 자아의 괴리에 섬이 있다. 그 섬에서 나오고 싶다. (정현종 ‘섬’ 참고)

자기 추구

“락으로 세상을 바꿀 거야!”

잭은 믿었다. 자신은 락을 좋아할 뿐,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 신념이야말로 친구 집에 얹혀 사는 잭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힘이었다. 꿈에 대한 신념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다. 그러나 잭을 보고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를 오글거리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는 아찔함이 든다.

한국 학생들의 장래 희망 통계적 1위가 공무원, 우스개 소리로 건물주가 되었다. 이제는 학생들도 ‘꿈은 이루어진다.’가 노인의 ‘늙으면 죽어야지.’ 같은 관행구라는 것을 안다. GDP 3만 달러에 육박한 국가에서 죽을 때까지 무사하게 먹고 사는 것이 꿈인 모순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직면한 현실이다. 학생들은 꿈을 좇지 않고, 현실에 쫓긴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나의 속도가 아니라 현실의 속도이므로, 현실이 아닌 나는 쉽게 부정된다. 현실은 모든 분야의 최선이 우수의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모든 것일 수 없는 개인은 자기 긍정보다 자기 부정의 경험이 누적되는 것이다.

자기 부정성은 무엇으로 삶을 추동하게 만들까? 핫식스를 마시며 헐떡대는 대가로 주어지는 점수의 소박한 확실성 속에서, 자기 소진의 우울감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잭 친구의 얼굴이야말로 정규 교육 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학생의 미래는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라리 중2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를 카톡 프로필이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새길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부류다. 자신을 긍정하는 한, 해야 할 일의 폭격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놓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수행한 시간을 차곡차곡 포개놓으면 언젠가 현실에, 기습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기습을 준비하는 기분은 조금 설렐 것이다.

[스쿨 오브 락]이 보여준 정반대편의 교육 체계 안에서 나는 어떤 직업인인지를 생각했다. 내 학생은 입시 논술의 질서라는 명목으로 질식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매 수업마다 학생들은 자기 부정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

입시 체계를 벗어날 수 없는 나는 끝내 잭이 될 수 없다. 다만 너보다 조금 더 오래 산 덕분에 네 이야기를, 내가 아는 세계의 문법으로 해석해줄 수 있다. 제대로인지는 몰라도 가볍지만은 않을 나의 해석이 너 자신을 긍정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지만 오글거려 말하지 못하는 중2병의 스웩(swag)이 식지 않도록 보듬어주겠다. 찌그러진 너를 펴주겠다. 내가 있어, 너는 오답이 아니라 너의 정답을 찾아가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서 수업 시간만큼은 네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답안 가득한 너의 자기 부정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싶다. 버티다보면, 너는 나를 닮아 있을 것이다. 내 밥벌이의 당위는 꽤 쓸 만하다.

그러면 언젠가 네가 내 괄호를 채워주지 않을까.

 김봉성

대충 살지만 글은 성실히 쓰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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