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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 거짓말의 효용
박선우 | 승인 2018.05.15 11:56

[논객닷컴=박선우]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한 소설은 지루하다. 선한 건 좋은거고 악한 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좋은 소설은 당연하게 여겨져 온 것들의 이면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좋게만 믿어지던 것들의 위선을 깨고 천대 받던 것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깬다는 카프카의 선언은 그런 의미다. 책에 대한 카프카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전석순의 『거의 모든 거짓말』은 좋은 책이다.

'이제껏 진실은 과대평가 되어 왔다. 거짓말은 회복할 수 있을만큼 사랑을 병들게 하지만 진실은 사랑을 아예 도려낸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낸 관계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거의 모든 거짓말』, 7p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인 '나'는 불안하다. 1급으로의 진급 평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급 자격증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은 요원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에게 거짓말 자격증 1급은 사회가 보낸 마지막 초대장과 같다. ‘나’는 절박하게 분투하지만 늘 그렇듯, 마지막 초대장을 받은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1급의 벽은 높고, 오늘도 엄마는 집안 거실까지 쳐들어온 채권자들에게 악을 쓴다. 빚쟁이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바쁜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어올 때면 자신이 예전엔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딸에게 “구라”를 풀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구라가 조금은 반갑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지 몰랐다. 엄마는 아버지가 좀 더 근사한 구라를 쳐주길 바랐던 것 아닐까. 이미 단단하게 굳은 마음도 허물어뜨릴 수 있을만큼 뜨끈하게"
『거의 모든 거짓말』, 57p

백화점 사장, 형사, 건물주... 아버지가 자신의 '구라'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와 엄마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가 아버지의 구라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거짓말을 애써 믿어야만 ‘나’는 처참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성공한다는 식의 명언은 성공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자들에게나 필요한 말이다. 신발을 신은 채 방을 뒤지는 채권자가 대수롭지 않은 인생들에게 필요한 건 냉정한 진실이 아닌 희망찬 거짓말이다. 내 인생이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나’에겐 필요할 뿐이다. 설령 그 가능성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런 딸의 마음을 아버지는 알았을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의 엉성한 거짓말은 멈추지 않는다.

©픽사베이

『거의 모든 거짓말』은 진실이 곧 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친구가 잠을 줄여가며 떠준 스웨터의 디자인이 형편없을 때, 며칠째 라면만 먹고 있는 내게 어머니가 밥값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때,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들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요새 통 입맛이 없다고 기꺼이 거짓말 한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을 '거짓말'에 담는 것이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 믿는 흔한 희망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진실보단 거짓말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꺼이 거짓말하고, 기꺼이 거짓 희망에 속는 건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 희망으로 작은 힘을 비축해 내일 닥쳐올 일상을 견디기 위함이다. 그렇다. 『거의 모든 거짓말』은 ‘거짓말이 정말 나쁘기만 합니까?’라 묻는 하나의 질문이자 설득이다.

진실과 거짓말의 위계는 여전하다. 많은 경우 거짓말은 상대의 신뢰를 배반하는 이기적인 행위다. 단지 작가의 시선은 거짓말을 통해야만 사랑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을 응시한다. '언제나 진실하라', '거짓말은 죄악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만큼 우리의 인생은 매끈하지 않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는 시집 제목처럼, 거짓말에 기대야만 살아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때도 당신은 진실하고 솔직한 윤리관을 관철할 것인가? 내면의 바다를 찍는 젊은 작가의 도끼질이 매섭다. 

박선우  hiena1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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