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가톨릭은 평화의 종교다. 모든 가톨릭 미사에서 신도들은 “평화 인사를 나누세요”라는 사제의 말을 따라 자신의 전후좌우의 신도들을 향해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를 나눈다. 그런 평화의 인사 의식이 있는 종교는 아마도 가톨릭뿐일 것이다.

가톨릭이 평화를 강조하는 것에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불화하고 갈등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성서의 구약시대는 전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의 상징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땅으로 남아 있는 이스라엘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간의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피어나고 있다. 이 평화가 진정성과 지속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가질 예정인 6·12 북미정상회담은 평화의 길을 향한 최대의 분수령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았던 북한의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가 이 회담에서 결판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북한의 핵폐기 의지에 세계의 모든 나라가 환영했으나, 폐기의 방법과 그에 따른 대북 보상 방법을 둘러싸고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런 복잡한 세속의 이해타산이 없이 한반도의 평화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종교이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인스타그램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해 왔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지속적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할 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그의 지극한 한반도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최근 4·27판문점선언을 ‘용기 있는 약속’이라고 했다. 판문점선언 이틀 뒤인 4월 29일 주일 기도에서 성베드로 광장의 신도들에게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나온 긍정적인 결과에 진지한 기도를 보탠다”면서 “핵무기에서 자유로운 한반도를 향해 진지한 대화의 길에 오른 두 지도자를 축복한다”고 했다. 이어 “평화로운 장래에 대한 희망이 어긋나지 않고, 이 같은 긴밀한 공조가 사랑하는 한국인과 전 세계에 혜택이 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된 후인 4월 1일 부활절 메시지에서도 “한반도의 대화가 평화와 화합을 진전시키기를 바라며, 직접적인 책임 당사자가 지혜와 분별력을 발휘해서, 한국인의 안녕을 증진하고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작년 12월 25일 성탄메시지에서도 교황은 “한반도에서 대치를 해소하고 상호신뢰를 증진시켜 전 세계에 유익이 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1월 8일 교황청주재 외교단과의 신년인사회에서는 “평화를 확산시키려면 무장해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에서 대화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지지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작년 9월 2일에는 바티칸 사도궁에서 한국 종교지도자협의회의 예방을 받고 “한국인에게 평화와 형제간 화해라는 선물이 주어지길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며 “우리는 비폭력적인 평화의 언어로 공포와 증오를 야기하는 것들과 맞서야 한다. 여러분을 보니 아름다운 한국 땅으로 향했던 지난 순례길이 생각난다”고 했다.

교황의 이 같은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말처럼 2014년 8월 그의 한국방문이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황이 방한 중이던 8월15일, 한국이 교황의 열기 속에 빠져 있던 날, 영세를 한 인연으로 교황에 대한 남다른 친근감을 지니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앞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또한 두 번(1984년 5월, 1989년 10월)이나 방문해 축복한 땅이 한국이다. 가톨릭 선교역사에서 한반도는 특이한 존재다. 18세기 조선왕조 때 전파돼 전교 200년이 넘은 가톨릭은 서방의 선교사 없이 토착 평신도들로 신앙공동체를 설립해 전교를 시작한 세계 유일의 경우였다. 조선 왕조의 탄압으로 1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를 낸 땅이기도 하다.

현세에 들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고, 2차 세계대전 종전 과정에서 국토가 분단된 이후 동족간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분단된 나라로 남아 적대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남쪽은 열린사회이고 북쪽은 닫힌사회이다.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남북 간의 경제력격차를 40대 1로 벌려 놨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남쪽에선 세계적인 가톨릭 신자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신도가 늘어나고 있다. 북쪽은 주체사상이란 이름의 김일성 3대의 우상화에 매달려 주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두 분의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가 기도의 제목이 된 것은 어쩌면 하늘의 섭리다.

교황은 이렇듯 평화의 사도이지만, 지구상에는 교황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나라도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모국인 폴란드를 방문한 뒤 그곳의 공산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이 교황을 두려워한다. 북한도 그 중 하나다.

연초 교황청 대사로 부임하는 친지를 위한 송별모임에서 나는 그에게 “재임 중 교황을 모시고 평양에 가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지금 살얼음판을 걷듯이 진행되고 있는 남북미 간의 대화가 진전되어 나의 덕담도 실현됐으면 좋겠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