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2015년,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취임 후 남녀 동수의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간단히 답했다.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그로부터 3년 후, 대한민국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집권여당의 광역시장, 도지사 후보에는 여성이 한명도 없다. 1995년에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광역자치단체장에 여성이 당선된 적도 없다. 2017년 대선에서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으로 대접받았다. 취임 후에도 과연 그 공약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결국 여성 장관 5명에, 원래 장관급이었다가 이명박 정권에서 차관급으로 변경된 보훈처장 자리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그 자리에 여성인 피우진 처장을 임명함으로써 30%를 넘겼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내각에 여성공직자 비율을 5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은 물론 집권여당 지방선거 주요 후보에도 여성 후보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차별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 명단. 여성은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고, 50대 이상 남성들로만 구성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캐나다의 2015년과 한국의 2018년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여성은 아직 시장이나 도지사를 맡을 만큼의 역량이 없는 것일까? 일부 남성들이 주장하는 대로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일까? 캐나다에서 남녀여성 동수의 내각이 발표되었을 때 누군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남자들은 좋겠다. 실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동수 원칙 때문에 50%나 내각에 포함 돼서.”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평소에 비아냥대는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오랫동안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어온 여성들의 자조와 분노가 담겨 있다.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최초의 여성 유대인계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나 있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전원’이라고 대답한다. 나의 대답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전원이 남성일 때는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대법관이 전원 여성으로 임명된다면 거의 폭동과 같은 혼란스런 사태가 벌어지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대학에 여학생들이 입학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50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비리그’ 라고 불리는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 중 예일과 프린스턴이 1969년부터 여학생을 받기 시작했고 하버드는 1977년, 컬럼비아는 1983년에 처음으로 여자 학부생을 입학시켰다. 하버드는 1636년, 예일은 1701년에 각각 설립되었다.

물론 전쟁과 정복 중심의 오랜 역사에서 여성들이 소외되어왔고 여성들의 본격적인 사회진출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거의 사례를 계속 들추는 것이 불합리해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캐나다의 2015년으로부터 무려 3년이 지난 2018년에도 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광역시장과 여성 도지사를 볼 수 없는 것인가? 왜 아직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을 언제까지 우리의 숙제로 남겨둘 것인가? 숙제는 오래전에 주어졌고 이제는 풀어야 한다. 지금은 2018년이니까.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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