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고라니]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면접 전날에는 한 가지만 집중했다. 미소 짓기. “개구리 뒷다리~”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웃는 거울 속의 난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처럼 보였다. 내 얼굴은 웃는 상이 아니어서 억지로라도 얼굴 근육을 풀어놔야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리라 믿었다. 다행히 난 직장인이 됐다. 그러나 평소의 자연스러운 표정, 그러니까 기쁠 때 웃고, 화날 때 찡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되찾지는 못했다.

회사에서는 표정조차 평가 대상이었다. 상사들은 후배의 성실성이나 업무 완성도보다는 그 후배가 얼마나 밝고 긍정적인 얼굴로 업무지시를 받는지를 살피곤 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상사가 밀어낸 잡일이든, 체육행사가 끝난 뒤 2000명이 먹고 남은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것이든 종류는 상관없었다. 딱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로 업무를 한 적이 있긴 했다. 새벽 4시, 사장의 빙모상에 동원돼 한 번도 뵌 적 없는 고인의 시신을 묘소에 내려놓을 때였다.

©픽사베이

입사하자마자 나와 동기들은 그룹본부에서 제법 높은 사람이 썼다는 책을 한 권씩 받았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한 자기계발서 류의 책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약간의 야망은 있었는지 무시무시한 크기의 별표를 찍어가며 정독한 기억이 난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상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일을 해치우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상사의 눈높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찾으면 그만큼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약 1년은 이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했다. 전임자가 인수인계 없이 퇴사해 밤 12시에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그 와중에 전화영어를 하고, 보고서 작성법 인강을 듣고, 직급이 낮다고 업무요청을 무시하는 상급자들을 찾아가 사정사정해 자료를 받아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조차 보람이었던 것 같다. 나름 글로벌 회사니까 어학능력이 좋으면 다양한 업무에 투입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결재권자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보고서는 소용없다고 판단했고, 당장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는 일이 되게 만드는 것이 담당자로서의 책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소위 잘 나간다는 직장선배들은 “상사의 눈”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 주 열리는 임원회의에서 부사장과 전무, 상무, 상무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사장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아침까지만 해도 마흔 살 먹은 차장에게 결재판을 집어던지며 나가 뒤지라고 소리 지르던 어떤 상무는 오늘 점심은 일식으로 예약해뒀다며 사장 옆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어떤 팀장은 점심시간에 스타벅스 라떼를 들고 들어오는 젊은 직원에게 “사장님께서 요즘 애들이 그런 커피 사먹는 거 싫어하시는 거 몰라?”라며 면박을 주고, 어떤 과장은 임원이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탕비실로 달려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믹스커피를 대령한다. 그리고 잠시 뒤, 비흡연자인 나를 데리고 나가 코앞에서 담배연기를 뿜어 대던 과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내게 “얼굴이 왜 그래?”라며 쏘아붙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물려받을 재산이나 전문자격증이 없는 대다수의 직원들은 지속적인 현금흐름 창출 방안을 회사 안팎에서 치열하게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직장인들은 회사 안에서 인사권자들을 열심히 보필하는 생활습관이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그나마 보장된 길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상사의 취향과 욕망을 빠르게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것이 곧 직장에서의 능력이고 평판관리다. 이는 업무영역을 넘어 옷차림과 말투, 표정에 대한 ‘고나리질’, 내 여가시간에 대한 관심을 빙자한 취조(“어디 애인이랑 좋은 데 갔다 왔나?”), 금요일 저녁의 번개, 집단의 평화를 위해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남자 상무를 못 본 척 하는 센스와 충성심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문화 등등을 수용할 수 있는지까지 그 범위가 무한히 확장된다. 물론 이 때 잃어버린 자존심은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에 대한 갑질로 채울 수 있다.

위와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의 모든 직장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풍경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곳을 떠나 다른 직장으로 도망쳐 온 지금은 조직마다 고유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으므로 자기가 속한 집단에 잘 맞는 사람도, 맞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조직의 문화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한다면, 그것이 사람 면전에 물을 뿌리는 행위든 일상에서 소소하게 자행되는 폭력이든 당사자가 그에 대해 부당함을 느꼈다면, 적어도 문제제기는 할 수 있어야 건강한 조직이다. 그리고 힘 있는 누구 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개인이 내는 목소리가 존중받을 때,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내 밥그릇을 건 용기 없이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먹고 사는 문제 외의 모든 이야기가 경시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으니까.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