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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불상 3제(題)[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서동철 | 승인 2018.05.21 09:10

[논객닷컴=서동철]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일주문 아래서부터 대웅전 마당까지 연등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것만으로도 절 주변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불교에 친근감을 갖고 있지만 불교 신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초파일이면 절을 찾아 산나물 비빔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연례행사다. 밥값으로 연등도 하나 달고….

오늘은 인상 깊었던 부처님이 각각 계시는 절 세 곳을 소개한다. 우리 역사에서 불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불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교와 인연이 없어도 소풍삼아, 여행삼아 다녀오기에 좋다.

국보 제63호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서동철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는 필자가 사는 파주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휴일에도 교통 체증 없이 다녀올 수 있어 좋다. 물론 파주에서만 그렇다. 우선 ‘피안에 이른다’는 절 이름부터 묘한 이끌림을 준다. 피안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저 ‘저 건너편’이라고만 읽어도 뭔가 숨쉴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 절에 가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철조 비로자나불 때문이다. 불상의 앉은 키는 91㎝ 정도이니 오늘날의 성인 남자와 비교하면 조금 작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 철원에 살던 사람들의 몸집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당시에는 등신대(等身大), 곧 사람과 같은 크기를 염두에 두고 불상을 조성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표정이며 몸짓은 당시 수도 경주에서 조성된 것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크기도 다르고 재질도 다르지만 석굴암 본존불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절대자의 모습이라면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인간의 모습이다. 이 부처님을 865년(신라 경문왕 5년) 조성했다는 것은 등에 명문(銘文)이 있어 알 수 있다.

쇠붙이를 녹여 만든 철불이라는 것도 이 부처님의 매력이다. 거친 표면의  검붉은색 비로자나불에서는 금동불과는 다른 단호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20년 남짓 전 이 불상을 처음 봤을 때는 금박이 덧입혀져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지은이 유홍준 선생이 문화재청장 시절 금박을 벗겨낸 것은 잘한 일이다.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문화재청

흔히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은진면의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국보로 지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최근 들렸다. 높이 18.12m의 이 고려시대 불상이 오래 전부터 미륵으로 믿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국보가 되어 화제라지만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니고, 1963년 보물 지정 이후 55년만에 승격한 것이다.

그러나 은진미륵은 이름처럼 미륵보살이 아니라 관음보살이다. 고려 광종 19년(968) 조성에 들어가 목종 9년(1006) 완성했다. 고려가 중앙집권국가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후백제와의 결전지 논산에 거대 석불을 조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적국이나 변방 주민들에게 새로운 왕조의 위세를 보여주면서 관음보살의 권능처럼 현세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초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혁명의 지도자 미륵으로 믿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밝힌 국보 승격 이유가 흥미롭다. 먼저 ‘은진미륵은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한다. 체구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며,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풍기는 토착성이 강한 불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문화재청은 “은진미륵이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감각을 담고있으며, 우리나라 불교신앙과 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는 ‘비례도 맞지 않는 시골 조각가의 우스꽝스러운 작품’이라고 폄하되던 시절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가치를 높이는 바람직스러운 작업의 결과다.

보물 제337호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서동철

이제 ‘콩밭 매는 아낙네상’이 있는 청양 칠갑산으로 간다. 1989년 나온 국악가요 ‘칠갑산’의 고향이다. 지금도 노래방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화전민 어머니가 먹을 것과 바꾸어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보내는 사연을 그렸다고 한다.

칠갑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유서깊은 장곡사가 나온다. 상(上) 대웅전과 하(下) 대웅전 모두 약사여래를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데, 중생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제하는 부처다. 약사여래는 무릎에 올린 왼손에 작은 그릇을 들고 있다. 흔히 약사발이라 하지만, ‘치유의 능력을 가진 우주의 대(大)생명력을 담은 그릇’이라는 표현이 옳겠다.

그런데 하대웅전 약사여래가 들고 있는 것은 약사발이 아니라 밥그릇의 모습이다. 불상이 조성된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칠갑산 기슭에선 약보다 밥이 소중했을 것이다. 약사여래의 밥그릇은 ‘밥이 곧 약’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우리 불교의 힘이다.

약사여래가 고봉밥을 들고 있는 것같기는 한데 그릇이 너무 작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예수님이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마태복음’의 오병이어(五餠二魚) 이야기도 모르냐고…. 약사여래의 약그릇이 중생에게 나눠줘도 나눠줘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약사여래의 밥그릇은 작아 보일 뿐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궁금하신 분들은 부처님 오신 날 가족과 함께 장곡사를 찾아 직접 보시고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라.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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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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