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픽사베이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술을 안 마시고 사회생활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걸 오십이 다 되어갈 때쯤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국은행에 이십여년 다니다보니 술을 마시는 회식자리도 뜸했고 또 그런 자리여도 안 마신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 주는 분위기였다.

다니던 외국은행이 급작스레 철수하며 시중은행으로 옮겨가 생활한 팔년의 기간 동안 시종일관 가장 괴로웠던 시간들은 술과 씨름해야했던 자리에서였다.

은행장이 마시라고 주는 술잔을 받고는 못 마신다고 버틸 때의 곤혹스러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은행장과의 줄다리기가 진행되는 동안 좌중의 관심은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날것인지에 쏠려있었다. 얼마의 승강이 끝에 행장으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자 대부분의 참석자들로부터 볼멘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왜 김 부장만 예외를 인정해주느냐고.

다음 술잔이 내 차례로 돌아왔을 때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행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이 일으켜 세운거다. 다시 버티기에 들어가니 직속상사인 부행장이 내 잔을 대신 받아 마시겠다고 자청하고 나서야 간신히 수습되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술자리를 가급적 아예 회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기본적으로 술은 기호식품인데 마치 벌을 받는 형식이나 충성의 표현으로 인정되는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정이건 사회나 국가건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일들의 단초는 사소한 다툼이기 쉽다. 희랍어로 ‘아디아포라’란 단어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많은 박해나 탄압이 종교의 이름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왔다.

내가 좌장인 술자리에서는 절대로 술을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마시라고 강권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시 건배사에 즐겨 사용했던 구절은 십여년전 어느 설교테이프를 통해 알게 된 말로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것에는 사랑을’에서 인용하곤 했다.

우리나라와 21세기 이전 서양에서 성 어거스틴의 말로 오랫동안 알려지기도 했으나 1617년 이탈리아 스팔가토 지방의 대주교였던 마르코 안토니오 드 도미니스(Marco Antonio de Dominis)의 글 속에 담겨있는 구절로 밝혀진 명언이다.

사랑이 본질인 기독교에서 얼마나 비본질적인 차이로 인한 억압이 심했으면 당시 대주교가 그런 글을 썼을까하는 생각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깨우친 삶을 살고있나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가까이 있는 가족은 물론이고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넘어져 후회를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 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본질적이라 여기는 기준을 더 높여 나기다보면 사소한 일로 상처를 주고 받는 횟수가 줄어들겠구나 생각한다.

비본질적인 일에는 나와 다른 자유를 인정하길. 나날이 비본질의 범위를 넓혀가며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기를!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