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사실, 여행이라는 거 별거 없습니다. 굳이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행이 될 수 있죠.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도 낯선 곳이라면 혹은 익숙지 않은 곳이라면 충분히 설렐 수 있으니까요. 짐을 싸지 않아도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외국이 아니라 한국말들만 들려와도 좋습니다. 내 마음이 조금은 다르잖아요. 새로운 곳에 와서 평소와 달리 들떴고, 그런 마음에 주변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이런 것도 충분히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여행이 상당히 거창해졌습니다. 누구나 즐기는 취미가 아니라 가진 자들의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되어 씁쓸합니다. 때로는 해야 할 일로 간주되기까지 합니다. 젊었을 때 여행을 안 가면 언제 가느냐는 이상한 핍박이 들리기도 하니까요. 뭔가 모순적입니다. 나 좋자고, 나 살자고, 나 좀 쉬자고 가는 여행인데. 그러니까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인데 이것조차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조미료가 첨가되네요. 그러다 보니 여행은 점점 자랑거리나 미션으로 여겨집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흠, 정말 뭔가 이상합니다.

©픽사베이

여행도 일종의 기호식품입니다. 커피가 대표적인 기호식품이듯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반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 서열 1위인 것은 아니잖아요. 바닐라라테를 좋아하는 이가 서열 순위에도 못 들어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렇듯 미국이나 유럽에 가는 것이 여행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곳에 가는 여행만이 우위에 있는 게 전혀 아니란 말입니다. 까치산에 살면서 잠시 옆 동네에 다녀오는 것도 여행이고, 왕십리에 살면서 뒷동네에 다녀오는 것도 여행입니다. 그걸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요.

무작정 무작정 걷고 싶은 거리를 돌아다니고, 배 고프면 잠시 멈춰서 밥 먹고, 구경거리가 있다면 주춤거리기도 하고. 이게 여행 아니겠습니까? 잠시 일상을 놓고 다른 곳에 가서 그 풍경에 젖어버리는 것. 몸을 맡겨버리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전 오늘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처음 보는 동네에 발을 담갔거든요. 그것도 아주 푹요. 무려 11시간을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행이 되었어요. 그것도 아주 즐거운. 정말 만족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종종 동네 탐방을 해보려고 해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떠도는 거죠.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모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고 말았거든요.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데 말이죠. 하하,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천만 다행이에요. 여행 가고 싶다고 투덜댈 것이 아니라 조금만 이동해서 새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되니까. 그럼 자꾸만 눈에 뭐가 들어옵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이죠. 나무 계단, 무당, 운동장, 민들레, 벌 등. 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산뜻해졌지요.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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