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의 하루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정수연] 글쓰기에 앞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가자. 오늘 말하는 사랑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라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리고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의미한다.

이 때 사랑이 의미하는 폭이 넓어진다. 단순히 연애 감정뿐이 아닌,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 것, 반려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 취미생활을 유지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이런 사랑은 인류에게 있어 보편적인 감정이다. 누군가는 동성을 사랑할 수도 있고, 혹은 취미를 사랑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픽사베이

얼마 전까지 나는 취미를 사랑했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사랑하고, 백석 시인이 남긴 시를, 한강 작가의 책을, 소극장을, 연극의 등장인물을 사랑했다.

소극장에 올라온 극을 보기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순간엔 시외버스의 공기마저 설레고, 눈앞에서 극이 펼쳐질 땐 흘러가는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무대를 눈에 담았다. 극장에서 나와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작년 5월은 행복하다 못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책 속에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시야가 넓어짐을 느끼고, 그들의 표현 방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책을 읽거나 연극을 관람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아무 울림도 주지 못하고 스쳐지나갈지도 모르는 것이 누군가에겐 큰 행복이 되기도 하고, 고달픈 하루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때론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거나,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는 요즘 저들을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 감정을 꾸준히 느끼느냐는 다른 문제다.

시를 사랑하지만 바빠서 자주 읽지는 못한다. 책을 좋아하지만 보는 횟수가 줄었고, 소극장을 사랑하지만 거리가 멀어 예전만큼 가지 못한다. 원하던 책을 읽고, 극을 볼 때는 꾸준히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들을 사랑한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비주기적으로 문학을 읽고 극을 안본지 6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은 다르다.

소극장에 들어갈 때의 설렘을 기억하지만 추억하는 지금 설렘을 느끼진 않는다. 책에 미친 듯이 몰입해 읽을 때의 느낌이 기억나지만, 그저 기억에서 그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저들을 사랑한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가 아니다. 감정을 직접 경험할 때 감정은 에너지가 되고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앎에서 끝난다.

에밀 아자르는 책 <자기 앞의 생>에서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고. 옳은 말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대상을 사랑함으로서 나오고,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으로부터 생긴다. 무언가를 사랑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행복이 되고, 위로가 되고,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사랑이 될 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고, 그 힘이 다시 그것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이것은 반대로,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더라도 그 때 생기는 에너지가 없다면 사랑할 수 있는 힘 또한 생길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지금의 나는 후자에 해당된다. 취미를 사랑하지만 자주 즐기지 못하다보니 그 때의 에너지가 없어졌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핑계를 댄다. 소극장 가기가 어려워서, 바빠서 책을 읽기 어렵고, 읽어야 할 것들이 많아 자주 읽을 수 없다고, 그래서 좋아하지만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다.

나 또한 사랑하고 싶다. 사랑할 때 느끼던 열정을 느끼고 싶고, 당시 그 행복을 다시 갖고 싶다. 핑계로 점철된 사랑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정수연

사람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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