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불금이다. 퇴근길에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러 간다. 200그램 1인분에 1만 오천 원이다. 내가 쏠게, 라고 호기를 부리기엔 부담스런 가격이다. 쇠고기 수입 개방 전엔 1인분에 5천 원 정도였다. 그 땐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서로 사겠다고 야단이었다. 물론 그새 더치페이 문화가 더 굳건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쏘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삼겹살 인기가 정점을 찍었다. 인기몰이에 힘입어 허브, 녹차, 와인 삼겹살처럼 다양한 맛을 입힌 삼겹살이 등장했다. 가격도 8천 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양돈 농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구제역이 돌아 수백 만 마리를 파묻었다. 공급이 달리니 가격이 올랐다. 구제역, 생매장, 가격 상승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친근하고 만만하고 맛있는 안주였는데 이젠 아니다.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돈(豚) 걱정을 하게 된다.

©픽사베이

돼지는 인간과 유전자 일치도가 가장 높다. 특히 장기의 크기나 모양 그리고 피부 조직이 비슷하다. 돼지 사진작가로 유명한 김미루는 미국에서 돼지 해부를 하다 인간의 장기와 너무나도 흡사한 돼지 장기를 본 뒤로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돼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직접 전라의 몸이 되어 돼지우리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보면 돼지와 인간의 피부가 얼마나 비슷한지 금세 알 수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의 기원을 원숭이와 돼지의 결합으로 태어난 돌연변이로 설정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

사실 돼지는 개보다도 아이큐가 더 높은 동물이기도 하다. 훈련만 잘 시키면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다.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된 새끼 돼지도 이름을 붙여 부르면 알아듣고 반응을 한다. 원래 아이큐가 높은 동물은 노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수틀 안에 갇혀 놀기는커녕 살찌우는 일이나 새끼 생산만 강요당하다 도축당하는 돼지의 삶이 걱정스럽다. 그렇게 감금돼 사육당하다 반은 미쳐버린 삼겹살을 돈(錢) 걱정하며 사 먹어야 하는 우리가 걱정스럽다.

그런데 걱정과 함께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유럽에서 백 년 동안 이룩한 산업화를 단 20년 만에 초고속으로 해치운 이 나라가 왜 구제역, 생매장, 가격 상승의 연례행사를 반복하고 있는지. 돈(錢)돈(錢) 하는 이 대한민국이 정작 돈(錢) 걱정하게 만드는 돈(豚) 걱정은 하지 않는지.

구제역은 백신 접종으로도 예방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잔인하게 생매장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구제역 백신을 쓰지 않는 나라를 청정국으로 구분해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제한 없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백신을 쓰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가축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에 구제역이 발생하면 도살처분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정말 백신을 쓰지 않아도 되는 청정국이 되고 싶다면 쾌적하고 넓은 환경에서 사육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결국 돈(錢) 걱정 때문에 돈(豚) 걱정은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돈(錢) 절약 하며 기른 돼지를 우리는 돈(錢) 걱정하며 구워먹어야 한다.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아니라 모순을 구워 먹는 것이다.

생매장은 폭력의 정수다. 난징 대학살이나 유태인 대학살 때도 생매장이 자행됐다. 전쟁이나 여타의 대량 살상이 자행될 때 그 하나의 가장 저렴하면서도 잔인한 방법이 바로 생매장이다. 그런 짓을 우리는 돼지한테 하고 있다. 구제역에 걸린 것도 아니고 걸릴 것 같아서 파묻어 버린다. 삼겹살 값이 치솟고 사람들은 다시 돈(錢) 걱정에 휩싸인다.

미국, 일본과 유럽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안락사 처분 후 매장한다. 생매장이 동물 권리를 침해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중범죄라는 사회적 목소리가 모여 이를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무차별적인 생매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박정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필가이자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 중.
숨 쉬는 존재들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향해 하나하나 실천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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