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며칠 전 판문점 통일각에서 이뤄진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회담”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말한 건 복잡한 절차와 의전을 생략하고 만났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만났다는 말도 된다.

사실 이념 문제를 떠나 남과 북은 ‘친구처럼’ 만날 수 있는 사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 아닐까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나 남북정상이 만날 때나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따로 통역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말 사이에 이질화가 상당히 진행돼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 속히 재개돼야 한다는데도 말이다. 분단이 70년째 접어들었지만 만나면 바로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는 사이, 이게 남북관계다.

남과 북의 동질성은 같은 언어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북한 사이에 산림협력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최근 4·27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위원장 임종석)는 남북관계발전 분과 아래에 ‘산림협력연구TF’를 두고 활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TF엔 통일부와 산림청 등이 참여한다. 선언문에 직접 명시되지 않은 사안인데도 정부의 후속 조치로 산림협력이 첫번째로 지목돼 눈길을 끌었다.

말이 남북 산림협력이지 내용은 한국이 북한의 산림녹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의 산림은 심각하게 황폐해졌으며 북한 스스로 해결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북한의 전체 산림 899만 ㏊ 중 32%인 284만 ㏊가 훼손됐다고 한다. 지난 10년 사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1973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덕풍계곡 인근을 촬영한 항공 사진(왼쪽)과 2014년 같은 지역을 촬영한 사진(오른쪽). 일제의 산림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해 진 산림이 지속적인 녹화사업으로 울창해 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 협력으로 북한에도 푸른 숲이 생겨날지 관심이 쏠린다. ©산림청

북한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까지 나무 65억 그루를 심는 산림조성 10개년계획(2014~23)을 추진 중이다. 2014년 11월 중앙 양묘장 현지 지도에서 “벌거벗은 산림을 그대로 두고, 이제 더는 물러설 길이 없다”며 “전후복구건설 시기 온 나라가 떨쳐나 잿더미를 털고 일어선 것처럼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돼 산림복구전투를 벌이자”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김 위원장 지시로 김일성 종합대학에 산림과학대학이 신설됐다. 지난달에는 평양 대성산지구에 산림연구원을 착공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산림녹화 자체가 워낙 장기 프로젝트다. 그런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지나면서 식량문제가 심각해졌고, 산림을 벌채해서 다락밭을 경작하는 경우가 많아 산림 황폐화를 부추겼다. 또 나무를 난방용 땔감으로 쓰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보다 베서 쓰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이런 노력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공산이 크다.

다행인 것은 남한이 1960~70년대 산림녹화를 이루어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어릴 적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우리 산엔 살 수 없어 갔다오…”

‘메아리’란 동요로, 1954년 시인 유치환이 한국전쟁 직후 조국강산이 몹시 황폐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작사했다고 한다. ‘자장가’를 지은 김대현이 곡을 붙였다. 후렴구가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인 것에서 보듯 이 동요는 식목일 기념노래로 1960·70년대에 널리 애창됐다.

하지만 ‘캠페인송’으로서의 효력은 지금 사라졌다. 한국이 산림녹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김경민 박사는 “1970년대 북한보다 더 황폐했던 남한 산림을 연간 10만 ㏊씩 복원했다. 20년 동안 장기적으로 산림을 가꾼 결과로서, 산림재생사업에 관해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축적된 노하우를 북한에 전해 줄 적임자가 남한이다. 더욱이 과거 우리는 북한 산림녹화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1999년부터 민간단체들이 중심이 돼 북한 묘목과 산림 병해충 방제 지원 등을 했다. 평양에 양묘장도 만들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시행된 5·24 대북제재 조치로 모든 남북 교류협력이 중단되면서 이 지원도 끊겼다.

향후 대북 산림협력에는 북한의 특수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땔감에 의존하는 북한 주택의 아궁이를 개량하는 문제를 방치한 채 나무만 심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우려가 있다. 정치적 논쟁에서 자유로운 것이 이 분야지만 표준시를 바꾼 것처럼 단숨에 할 수는 없는 문제다. 긴 안목을 갖고 남북 사이에 ‘생태적 동질성’을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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