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기억한다. 2010년 12월 나온 이 책은 출간 8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진입했다. 한국 출판사상 최단기록이었다. 이 책이 각 기관 필독서 리스트를 수놓을 무렵, 청년들에 의한 정반대의 평가가 소셜네트워크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아프면 환자지 그게 무슨 청춘이냐’였다. 노력에 따른 희생의 고통을 미화하며 청년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의견들이 그 뒤를 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년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라는 불명예를 이어가는 중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시작된 ‘노력’ 논쟁은 국민 중 58.7%가 ‘심각하다’고 꼽은 세대 간 갈등이 단순한 기질 차이가 아님을 시사한다. 노력이라는 두 글자에서 기성세대는 온갖 수모와 노고를 겪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낸 자신들의 과거를 본다. 정시퇴근도, 사원 복지도 없던 그때였지만 장밋빛으로 빛날 미래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힘이 솟던 그때였다. 기성세대가 20대를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라 부르는 것 역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20대는 정말 그랬으니까.

반면 청년들에게 노력이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 동아리로 향하는 그들에게 내 집 마련 같은 꿈은 사치다. 외모를 포함한 아홉 가지 스펙을 ‘기본’이라 부르는 현실에서 청년들은 ‘노력하면 안될 게 없다’ 말하는 어른들에게 부아가 치민다.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기성세대의 조언을 더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기진한 청년들은 ‘소확행(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답을 구한다. 현재는 각박하고 미래는 암담하니 나는 한 마리의 치킨을 먹으며 오늘 저녁 시간만이라도 행복해 지겠다는 태도다. 여기에 기성세대가 ‘거봐, 너흰 배가 불렀다니까’라는 훈계를 더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악감정만 축적되는 비극의 순간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By. 한병철, 『피로사회』, 7p

기성세대와 청년층이 마주한 시대의 질병은 달랐다. 기성세대를 괴롭힌 질병은 가난이었다. 살려면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해선 일해야 했다. 근로자의 기본 권리조차 헌납한 그들의 근면성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오랜 노력이 기성세대와 그들의 자식들을 먹여왔으므로, 노력이라는 두 글자는 견고한 진리로서 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에 반해 청년들이 상대하는 질병은 좀 더 다양하다. 지속된 저성장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거부로 인해 취업 시장은 얼어붙은 지 오래다. 머지않은 미래엔 가뜩이나 줄어든 일자리의 대부분을 AI(인공지능)가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들려온다. 눈에 띄게 노쇠한 부모님이 눈에 밟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힘들다는 푸념조차 하기 어렵다. ‘더 노력해야지’라고 중얼거려 보지만 어디서, 얼마나 노력을 더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캄캄한 현실과 미래를 견딜 힘을 소확행에서 구하는 청년들의 행동을 과연 무책임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층은 교집합을 이룬다. 달랐던 건 각자가 당면했던 시대의 과제와 그에 따른 노력의 형태뿐이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지했을 때,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건 대화와 소통일 것이다. 상대 세대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야 말로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진짜 ‘노력’이 아닐까. [오피니언타임스=시언]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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