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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복선, 여드름
이하연 | 승인 2018.05.30 07:53

[논객닷컴=이하연] 2014년 5월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다. 마냥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에 세 번씩 그를 만날 만큼 좋았다. 그렇게 내 모든 시간을 연애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렇게 생각했었다. 빨리 몇 년 차 커플이 되었으면. 아무리 좋아도 나만의 시간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 나의 애인은 사적인 개인의 시간을 딱히 인정하는 편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순종적이었던 당시의 나 또한 그의 비위에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얼굴엔 하나 둘 씩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픽사베이

그를 만난 2년 동안 성인여드름으로 온갖 고생을 했다. 대한민국 여자 사람으로 외모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엄청난 호르몬의 활동을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중학생 시절을 빼고는 얼굴에 뭐가 난 적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항상 피부 좋다는 말만 듣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여드름은 나한테 너무 충격적이었다. 화장품을 바꿔도, 생활 습관을 바꿔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드름은 내 기도와는 반대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한의원부터 피부과까지 들락날락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인기피증이 생겼는지 그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사람 덕후다.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었고 내 취미 또한 사람들을 뒤따라 다니는 거였다. 이랬던 나였는데 그땐 항상 집에만 숨어있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거울과 함께했다. 여드름이 사라졌는지, 또 생겼는지를 확인해야만 했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서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우는 날엔 음식과 활동을 더욱 조심했고, 웃는 날엔 그날 썼던 화장품을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그래봤자 결론은 항상 우는 걸로 끝났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2016년 여름에 노량진에서 그와 헤어졌다. 분명 아픈 이별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노량진에 가지 않는다. 왠지 가기가 싫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도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큼은 여드름 생각에서 살짝은 벗어났었던 듯싶다. 하지만 살짝은 상쾌했었다.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건가 하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시간을 오롯이 내가 빚을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 앞으로 생길 거라는 믿음이 불쑥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와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내 얼굴의 여드름은 몽땅 들어갔다. 참 신기할 노릇이다. 2년 동안 나를 괴롭힌 그 덩어리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주변 친구들까지 인정했다. 헤어졌는데 어떻게 피부가 좋아질 수 있냐는 얘기를 엄청 들었던 것 같다. 정말 거짓말같이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달라졌다. 단 일주일 사이에 말이다. 아침엔 물 한 잔 마시는 걸로 거울을 대체했고 밤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엄마와 떠들다 잠들었다.

엄마는 가끔 이런 말을 하신다. 다음 애인을 만날 땐 여드름이 나는지, 안 나는지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라고. 만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여드름이 안 난다면 관계를 유지해보라고.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상당히 그럴 듯하다. 그러나 난 진짜 이유를 찾고 싶었다.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된 여드름의 진짜 이유를 말이다. 그래야 다음번에 여드름이 또 나를 찾아오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게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찾은 여드름 발생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나를 가두는 무언가다. 그 무언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와 만나는 동안에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편하게 만날 수 없었다. 또 혼자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도 없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의견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평온하다. 특별한 연애 덕택에 내가 갇힐만한 상황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그곳에서 기가 막히게 뛰쳐나오는지. 여드름이 꿈틀대기만 하면 주변을 물색하기 바쁘다. 그때 마다 꼭 켕기는 게 있는데, 그게 제일 신기하다.

이하연  slimm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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